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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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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삶의 꽃자리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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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클라라의 유해가 모셔진 이탈리아 아씨시의 성녀 클라라 성당>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오 18, 22)

성녀 클라라 축일입니다. 또한 수산나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축일을 맞으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이탈리아의 아씨시는 두 분의 걸출한 성인을 배출하는데 한 분은 성 프란치스코이고 다른 한 분은 성녀 클라라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덕에 감화를 받은 성녀 클라라는 금욕과 고행과 청빈의 정신을 실천하며 생활하신 분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스스로 청빈의 정신을 가지고 생활하신 분으로, 이런 삶은 우리를 풍요하게 하시려고 부요하시지만 가난하게 되신 주님을 본받아 생활하는 곳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와 풍요함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녀 클라라를 생각할 때 "거울 미인"이란 말을 떠올립니다. 성녀는 늘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을 가꾸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거울을 자주 바라보며 자신의 미모를 가꾸어 나가는데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주님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미모를 가꾸어 나갔으니 외적인 얼굴만 예쁜 미인이 아니라 영혼까지 예쁜 미인이었을 것입니다.

성녀의 유해는 지금도 썩지 않고 아씨시의 끼아라(클라라의 이태리 말)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하기 어려운 것, 2가지를 들라면 첫째는 죄를 안 짓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 할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하느님 앞에 죄인이요,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많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할 때 나란 존재는 용서받아야 할 존재인 동시에 용서해야 될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또 인정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마음이 오그라들고 분노가 들끓고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현상을 자주 체험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용서란 정의에 위배되는 행위고, 상대에게 굴복하는 약자의 행위로까지 격하시키고, 용서의 선택과 기준은 그 사람의 고유한 자유이자 권리라고까지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용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의무라는 사실을 선언하십니다.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이 같은 베드로의 질문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선언하십니다. 7이란 숫자는 유태 문화권에서는 행운의 숫자, 완전한 숫자, 무한한 숫자를 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무제한으로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용서가 필요한데 하물며 신앙인은 더 더욱 용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날마다 주님의 기도 안에서 오늘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외우며 용서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인간의 잘못을 용서하셨고 지금도 성사의 은총 안에서 우리 죄를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 경험으로 보아 잘못을 용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무한한 용서를 생각한다면, 용서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매순간 용서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못한 다른 사람들도 용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을 죄인도 용서받는데 이웃의 조그만 실수와 잘못을 용서하는데 인색하다면 그것은 하느님과 사랑을 욕되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이웃의 잘못을 언제든 용서 할 줄 아는 넓은 마음과 따뜻한 사랑을 가진 그런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가 잘못했을 때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는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으로 되돌려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몇 번씩이나 잘못한 이를 용서하고 있습니까? 용서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우리 자신이 남을 단죄하고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하느님께 용서와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표는 잘못한 이웃을 얼마만큼 마음 속 깊이 용서하는가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서만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며, 용서가 없는 곳에는 미움과 증오, 죽음만이 남을 뿐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에서 제 스스로를 놓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언제나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6-08-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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