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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풍경소리

  • 이번주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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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주 풍경소리


교황 요한23세의,1960년, Cuba 美.蘇. 충돌 전쟁 위기,평화 조성 기여 문헌들과 이번 Cuba 방문 사진들
 교황 베네딕도16세 성하께서 2012년 3월 28일,  Cuba의 Castro를 만나시는 순간 ! 큐바 국민에게 보다 더 많은 자유를 주도록 말씀하셨다.
  사도 베드로, 갈릴레아 호수 어촌의 어부 후계자 로마 교황께서, 큐바의 반세기 묵은 악어를 낚아서 태평양 드넓은 바다로 자유의 해방을 주실까?

<이하 사진은 AP통신과 조선닷컴에 의거> 

 



쿠바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8일(현지시각)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야외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교황의 쿠바 방문은 1998년 요한바오로 2세의 방문 이후 14년만이다. /AP연합뉴스(조선 닷컴에서 퍼온 이미지)


쿠바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8일 아바나에서 피렐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고 있다./AP연합뉴스(조선 닷컴에서 퍼온 이미지)


쿠바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8일 야외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아바나 혁명광장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조선 닷컴에서 퍼온 이미지)



쿠바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8일(현지시각)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야외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AP연합뉴스(조선 닷컴에서 퍼온 이미지)


쿠바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8일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집전하는 야외 미사에 참석한 군중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AP연합뉴스(조선 닷컴에서 퍼온 이미지)


쿠바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8일 야외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아바나 혁명광장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조선 닷컴에서 퍼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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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지금 Cuba를 사목방문하시면서,

큐바 당국이 천주교회에 대한 억압과 박해를 완화시킬 것을 주문하셨으며, 큐바의 다방면에 걸친 현대화를 위한 노력에 가톨릭교회가 힘을 보탤 수 있게 해주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셨다.

1998년에 교황 요한바오로2세께서 일찌기, Cuba를 방문하시고, Castro를 만나서 대화를
하신 적이 있었으나, 무신론 공산주의 사상과 신조로 큐바는 아직도, 교회 건물 신축 일체
금지, 등, 천주교회에 대하여, 매우 강경한 억압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보다 훨씬 이전 1960년도 10월, 큐바에 소련의 미사일 배치와, 이를 해상
봉쇄하던 미국 사이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후르시쵸푸 간의 군사 충돌이 '세계
3차 대전 핵 전쟁'으로까지 확대될 위험이 극에 달하였었는데, 이 위기를 인류가 평화롭게
해결하도록 하는데는 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시고, 유명한, "지상에 평화를
(Pacem in Terris)"
회칙을 반포하신 요한23세 교황의 역활이 크게 기여하였슴을 밝혀주는
기록 문헌들이 공개되어 알려지고 있다.

1960년 10월 23일, 소련의 군함이 미사일을 싣고 큐바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미 해군 함정
들이 큐바를 포위하게 명령한 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열심한 가톨릭신자로서, 소련 크레
므린의 후르시쵸푸와 마지막 대화를 시도하기 위하여, 자신이 신임하는 Norman Cousins을
바티칸으로 급파하여 보내며 교황께 도움을 청하였고, 요한 23세께서는 기꺼히 도와주셨으
니, 다음 날, 요한23세 교황께서는 로마에 와 있는 소련 대사관으로, 평화를 호소하는 교황
서한
을 보내어, 즉시 크레므린으로 전달케 하는 동시에, 바티칸 라디오로 동 내용을 방송케
하셨다.

"국가 지도자들은, 평화, 평화,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함성에 무감각하게 귀를 막지 말도
록", 교황께서는 재삼 간곡히 당부하셨다. 3일 후, 10월 26일 자, 소련 공산당 기관지
Pravda 지에는,Head line 으로, 교황 요한23세의 이름과 함께, “우리는 국가 지도자들에게
평화를, 평화를 간청한다는
교황 요한23세의 서한문(We beg all rulers not to be deaf to
the cry of humanity)."이 실렸으며, 2일 후, 10월 28일에는, 소련이 군함을 철수시키기 시
작하였고, 후르시쵸푸는, 그 후로, "평화의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지금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연일 야단이다. 소련과 중국의 국가 원수들도
미사일 발사를 포기하도록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는 이 때, 오늘의 북한도 1960년 10월의
소련 흐르시쵸푸처럼, "지상에 평화"를 호소하시던 교황 요한23세 성하의 회칙이 주는 교훈
을 따라, 우리나라는 물론, 극동과 전 세계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도록, 미사일 발사를 포기
할 수 있다면, 후르시쵸푸처럼, "평화의 사람" 이라는 존칭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의 사람"이라는 존칭어는, 대통령이나 황제폐하라는 존칭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영구
적인 것이며, 세계적인 것이다. 전 세계 인류의 평화를 빼앗지 않고, 오히려 평화를 더욱 조
성하고 강화하는 선택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Msgr.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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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historical perspective: Pope John XXIII and the Cuban Missile Crisis
 









Pope Benedict XVI’s first apostolic journey to Cuba is watched with
interest across the globe.

Before him, Pope John Paul II travelled to the Latin American island
nation in 1998, a historic visit ? the first ever papal journey to Cuba
- during which he met with President Fidel Castro.

However, one of his predecessors had already played a key role in Cuba’s
history, preventing an escalation of cold war violence that could have resulted
in nuclear war.

With the II Vatican Council under way and with only a few months to live, Pope
John XXIIrd turned his attention to his great encyclical on peace: Pacem in
Terris.

Pacem in Terris was addressed not only to Catholics but to “all men and
women of goodwill” and was heralded by many in and outside the Church as a
landmark document.

The cold war in the 1960s and the continuing arms race between Russia and the United States brought fear to people the world over.

Things came to a head in the fourth year of John’s papacy with the Cuban
missile crisis in October 1962.

American spy planes discovered that Russia had secretly begun installing Soviet missiles in Cuba, only minutes away from the United States.

President John F. Kennedy made the discovery public and told Premier Nikita
Khrushchev that the presence of Soviet missiles just off our coast was unacceptable and insisted they be removed.

When Khrushchev ignored his ultimatum, JFK set up a blockade around the
island. Millions watched the final encounter on TV?the Russian ships approaching Cuba, the U.S. blockade standing firm and ready, and then the Russian ships slowly turning around and heading home.

Before this dramatic moment, however, much had gone on behind the scenes.

On October 23, after the blockade had been imposed, JFK made one last
attempt at dialogue.
He contacted Norman Cousins, who then contacted the Vatican and was told
that Pope John XXIII would be happy to help.

The next day Pope John sent a message to the Soviet embassy in Rome to be
transmitted to the Kremlin, and he voiced his concern for peace through the
microphones of Vatican Radio.

In part it read, “I beg heads of state not to remain insensitive to the cry of
humanity: peace, peace. Let them do all that is in their power to save peace; in
this way they will avoid the horrors of a war, the appalling consequences of
which no one could predict. Let them continue to negotiate….”

Pope John’s message appeared in Pravda, the official Communist newspaper,
on October 26 under the headline, “We beg all rulers not to be deaf to the cry
of humanity.” Khrushchev was given an out. By withdrawing he would be
known as a man of peace. Two days later on October 28, Khrushchev agreed
to withdraw the missiles.


Writer : Msgr. Byon    Date : 2012-03-29 01:01   Hit. 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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