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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풍경소리

  • 이번주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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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주 풍경소리


민주주의 자유사회 言論 속의 臆論도 잡풀처럼 베거나 깎지 말고, 뽑거나 아주 캐내어 버려야만,,,!
우리 인간사회에서도 잡풀은 베거나 깎지 말고, 뽑거나 아주 캐내어 버려야만,,,!
 
한민족 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 건립 추진 大聖業 터전 주변의 잡초 제거는 늘 先行되고, 竝行되어야 하는 일로서, 그리 쉽지 않은  불가피한 雜務가 아닐 수 없읍니다. 그런데 잡풀은 낫으로 베거나 제초기로 깎지 말고, 호미로 뽑거나 괭이로 뿌리까지 아주 캐내어 버려야만,,,! 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훌륭한 공무원들과 위대한 愛國 公人 순교자들에 의해서 하나하나 제거되며, 모두가 제대로 진척되고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의 구석구석, 심지어, 정치계와 사법계, 종교계와 언론계, 등 모든 분야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과 부패는 수박 겉핥기 식의 외형으로 들어나는 뇌물수수만 처벌위주로 하다가는 결코 근절시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세력을 지닌, 국가의 상하급 일부 공무원들의 부정도, 대가성 있는 뇌물만 가지고 따져서는 그런 공무원들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할 수 없습니다. 빙산일각처럼 돈이나 물건이나, 밖으로 들어난, 받은 뇌물만을 추적하여 소란을 피우는 것은, 풀 베기 같은 것이니, 풀은 베거나 깎으면 또 자라나게 마련이고, 뿌리만 더 튼튼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잡풀은 뽑거나 아주 캐내어 버려야만 합니다.
 
차라리, 예물이나 뇌물수수 여하를 따지기 전에, 공무원들과 公人들 각자가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해야할 자신의  직무수행 소홀여부를 최우선적으로 살피고 따져야 根絶할 수 있읍니다. 하지 말아야 하고, 결코 해서는 않되는 일을, 부당한 핑계를 내세워, 公益이 아닌 私益을 위하는 입장에서 처리하거나, 또는 할 수 있고, 해야 할 바를 미루며, 제 때에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오히려 최대의 비협조를 아끼지 않고 베풀어 주고 있지는 않는지를 묻고, 살피고, 확인하여, 엄벌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잡풀은 베거나 깎기만 하면, 뿌리만 더 튼튼하게 만들므로, 아예 뽑고, 캐내어 버려야만 할텐데,,,!
 
또한 우리 사회의 언론인들은 사실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공익을 위하여 알리고 밝히는데 마땅히 힘써야 합니다. 보도의 자유와 권리는 공익을 위하여 먼저 정직하고 정확하게 보도해야만 할 의무와 원칙이 전제된 조건하에서만, 보도의 그 자유와 권리의 타당성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일부 언론(言論)의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듯한 사실 과장이나 축소, 나아가, 과도한 억단(臆斷)과 억상(臆想) 일변도의 편파적인 선전과 선동은 언론(言論)이 아니고, 억론(臆論)이며 악론(惡論)이라고 아니할 수 없읍니다. 또한 臆論꾼들이 言論의 마당에 나와 외치는 함성을 듣고 따르려는 이들의 책임이 더 큽니다. 상품이 신통치 않을수록 포장과 선전이 요란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 옛날 시골 장마당의 약장사꾼들이 생각납니다. 萬病通治로 그 약만 먹으면 죽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지만, 먹고 안 죽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억론(臆論)과 투쟁하는 言論人 순교자들의 역활이 시급히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백성의 소리는 하늘님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옛 로마인들의 속담은, 선량하고 정직한 백성들의 수준이 전제된 속담입니다. 그러나 떼로 몰려 다니며 외치는 이들의 함성이 반드시 正義는 아니었습니다. 기적의 빵 잔치를 먹고나서, 예수를 왕으로 모시자며, 예루살렘에 入城하는 길에 옷을 벗어 깔며,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환영의 만세를 부르던 군중들이, 예수 타도를 외치며, 평소 원수처럼 지내던 헤로데 왕과 필라도 총독이 합세하여, 십자가의 구세주 그리스도의 사명 완수를 가능케 하였다고나 할까, 하느님은 불의한 행동에서도 구원의 결과를 내게 하셨읍니다. 나무에 올라가라고 권고(勸告)하고 부추기며 거들던 사람들이, 바로 이제는 나무에서 떨어져보라고, 나무를 흔들어대는(勸上搖木) 꼴이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부지기수가 아닙니까?  
 
眞理와 正義는 多數決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이 모두 모여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는 고함 소리는 분명히 正義가 아닌 不義였고, 선전꾼들에 의해 虛僞를 眞實이라고 믿도록 煽動되어 動員된 우매하고 不良한 패거리들의 아우성이었습니다. 일부 국민들과도 되도록이면 싸우지도 말아야 하겠지만, 일부 국민들을 오염시키는 억론과는 반드시 불가피하게, 순교자답게 우리는 싸우다가라도 죽어야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일부 국민들이 건전한 常識과 선량한 良心을 포기한 결과를 살펴보면, 최근의 억론을 茶飯事로 여기며 불철주야로 동분서주하는 일부 홍보매체들의 보도 자세와 방법과 표현은, 보도 사실 내용 그 자체 이상으로, 우리 사회를 소란하고 불안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언론 아닌 억론이 사회를 망치고 있으니, 온 국민은 정신을 차리고, 함께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최근 종종 양심과 상식, 즉 양식(良識)을 저버리고, 우리 사회와 우리 나라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주요 기관이나 단체나 훌륭한 公人들의 求心力弱化시키고, 無力化시키며, 나아가, 국권을 無效化시켜, 마침내 국가를 파괴하고 전복시키려는 의도와 계획과 구체적 시나리오를 가지고, 공격과 방어를 주고 받으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臆論과 言論의 전투 現場化’의 책임은 우리 국민들, 특히, 적지 않은 지성인들과 더욱이 우선 우리 종교인들에게도 없지 않다고 생각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고, 상식이 결여된 결과입니다.
 
얼굴에 검은 점이 하나 있어도, [점박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심해야만 하는 말인데, 黑人일 가능성이 있다든가, 나아가, 아주 [흑인의 혈통]이라고 믿도록 선전한다면, 이 얼마나 정직하지 못한 반언론적 비난이며 비평적인 공격이 극치에 달하는 모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하며,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오늘 뿐 아니라 내일도, 모래도, 후손들도, 모두가 共生하는, 같은 한 나라 大洞體의 구성원들이 어쩌다가 이렇듯, 아주 마음과 얼굴이 후안무치의 뻔뻔스러운 뻔돌이들과 뻔순이들이 될 수 있는지 ! 함께 얼굴을 맞대고 말을 하지만, 서로의 마음은 겹겹이 일천개의 산이 가로막혀 있기도 합니다(對面共話 心隔一千山).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 사회를 바로잡고 淨化하며 先導해 나갈 수 있는 중차대한 사명과 책무는, 실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言論人들에게 주어져 있다고 확신합니다. 內道를 잃고도 自淨力조차 상실해 가며, 교회와 사회로부터 존경과 영광과 인ㅅ기와 추앙과 명성을 기대하는데 마치 환장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일부 우리 종교인들한테서 보다는, 현 사회 정화를 위하여 正直한 言論의 사명과 그 위력의 역할에 국민들의 기대와 요청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일부 言論의 臆論化는 良識있는 국민들과 正直한 言論만이 淨化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眞理와 自由와 正義가 점점 사라지게 되면, 심지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종종 가난한 자로 僞裝한 弱者 아닌 惡者들의 出現과 이들의 不法과 無法 조차 두둔하는 臆論人들이 활개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反社會的이며 反國家的인 시나리오 작가들과 함께 제 정신을 잃어버린 나그네에 불과한 관람객 수준의 일부 국민들에게는, 나라도, 가정도, 자신도 멀어지고, 빼앗기고, 사라져갈 것입니다. 실로 소리만 말 소리이지, 말이 안되는 말을 하며(語不成說), 기가 막혀 말도 막히고, 아예 말이 끊어지고마는(言語道斷),  臆論의 대홍수에 진정한 언론역시 수장되어, 억장(臆腸)이 무너지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황소 귀에다 대고 경서를 읽는 격이니(牛耳讀經),망아지 귀에 동풍이 스치고 지나가는 폭입니다(馬耳東風). 핑게야 구부러진 쇠 뿔을 곧게 펴기 위해서라며 도끼나 큰 무쇠망치로 소의 굽은 뿔을 내려치다가 소를 때려죽이는 격이 허다합니다(矯角殺牛).
 
그러나, 雜草의 根絶을 위하여, 순교의 피를 뿌리고 있는, 일부 위대한 公務員들과 公務 수행자들과 특히 훌륭한 언론인들과 함께,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배가하여, 우리 모두가, 마치 실또랑물이 모여 냇물이 되고, 냇물이 합쳐서 큰 강물이 되듯, 自由와 眞理와 正義를 지키고, 아끼고, 가꾸며 따르는 한, 우리는 반드시 영원히 승리할 것입니다. -Msgr. Byon

Writer : Msgr. Byon    Date : 2015-04-21 09:50   Hit. 2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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