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眞菴聖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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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풍경소리

  • 이번주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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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주 풍경소리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 탄생250주년 기념 시문비 <초안>
본문이미지
85주일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탄생 250주년 기념일!
기념일!
 
오전 11시: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념 詩碑 제막식,
낮   12시: 경축미사,
오후 1시: 경축회식!


어린시절부터(昔我童時遊) 이벽 성조를 사사(師事)하며, 약 10여년 이상(1776~1784) 修學하던 정승지의 母校, 천진암 성지에서는, 정승지가 천진암 현장에서 지은 수많은 詩文 紀念碑 제막식이 있습니다.

천진암 현장에서 지은 정승지의 여러 詩文은 최초 少年으로 1776년부터 마지막 老年으로 1827년에 와서 3일간 머물던 때까지 , 모두 51년간에 걸쳐, 종종 천진암을 찾아와 머물며 현장에서 저작한 詩文이 모두 90여수, 7,000餘字에 이르는데, 처음부터 저 방대한 시문들 모두를 단 번에 다하기는 어려우므로, 이번에는 시문 제목과 저작 연대와 일부 주요 내용만이 비문에 담겨지겠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하면, 저 방대한 시문들 하나 하나 모두가 앞으로는 저작 현장 천진암 성지에 詩碑로 남아서, 우리의 스승이 되고, 거울이 되며, 우리 겨레의 정신문화를 온 세계에 알리는 얼굴이 될 것입니다.

365일, 24시간, 항상 흘러나오는
天眞菴 氷泉水처럼, 또, 天眞山 메아리 처럼, 오늘의 우리와 내일의 후대들에게 순수하고 진솔하며 소박한 詩文碑 건립을 위하여, 뜻있는 분들의 참여와 협력을 기다립니다.

<천진암 성지에서 卞基榮 몬시뇰>

* P.S. 漢文에서 童時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10세 이하를 뜻하며, 11세부터는 少年이라 하고, 장가를 들기 시작하며, 정약용 승지는
15세에 결혼을 하였는데, 그것은 형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좀 늦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정약용 승지는 1770년 경(8세)부터 천진암에 자주 놀러 왔거나, 젊은 이벽 성조께서 가르치는 天學堂이라할 수 있는, 절간의 서당에서 공부하였음을 알 수 있으니, 이를 회고하며 추억하는 詩文이 늙으막 65세 때(1827년) 천진암에 와서 지은 天眞消搖集에 여러 대목에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 <현대인들이 알기 쉽게 몇 줄만 추려서 譯述해본다면,>
石徑細如線. 천진암 오르는, 바윗돌 사이로 난 이 오솔길은,
昔我童時遊. 내가 어린 아이 때 까불고 오르내리며 놀던 길이지 !
豪士昔講讀. 여기는 호걸스러운 선비들이 講學하며 讀經하던 곳인데,
前躅凄迷不可求. 그 옛날처럼 그 생활, 다시는 해볼 수 없으니 한이로세!
禪房無處舊人求.
참선하는 방에서 기도하던 옛 친구들 모두 사라졌으니,
이 세상 어디를 간들 그런 벗들을 구해올 수 있으랴?
粥鼓斜陽念舊游.
저녁 죽 먹으라고 치던 북소리, 해질렼에 같이 놀던 옛 동무 생각나네!
我欲來此住. 천진암에 아주 와서 살고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無人示方便. 아무도 나에게오고 가는 방도와 머물 곳을 마련해 줄 사람 보이지 않네.
三十년來重到客.이제 30여년만에 나도 나그네가 되어 다시 와보니,
猶然苦海一孤舟.
그 때나 이 때나 역시 나는 괴로운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조각 배 한척의 신세로다!
,,,,, Msgr. Byon
<전면>

文度公 요한 丁若鏞 承旨 誕生 250周年 紀念 詩文碑

시문 저작 연도와 장소
丁若鏞 (1762~1836)
贈李檗 1777年 天眞菴
同友人李德操檗乘舟入京 1784年
斗尾
友人李德操輓詞
1785年 花峴
端午日陪二兄游天眞菴
1797年 天眞菴
早起 1797年 天眞菴
山中感懷 1797年 天眞菴
寺夕 1797年 天眞菴
游天眞菴記 1797年 天眞菴
中庸講義補 1814年 康津
先仲氏墓誌銘
1816年 康津
鹿菴權哲身墓誌銘 1822年 馬峴
自撰墓誌銘 1822年 馬峴
天眞消搖集 1827年 天眞菴
蔓川遺稿跋文
1830年 馬峴
李檗傳 1833年 馬峴
朝鮮聖敎史記 1833年 馬峴
2012년 8월 5일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誕生 250周年 紀念
韓國天主敎會發祥地天眞菴聖地委員會 立碑

<後面>

李檗(1754~1785)
權相福文集跋文 天學考 1773年 天眞菴
上天道 1778年 봉점사춘파대
聖敎要旨 1778年 天眞菴
天主恭敬歌 1779年 天眞菴
崇禮義 1779年 天眞菴
天主密驗記 令得敬神記 險世聞得記,
來世預言記,天堂地獄記 1785年 水標洞
巫峽中峯之勢死入重泉
銀河列宿之年錦還天國 1785年 花峴

李承薰(1756~1801)
襟懷灑落光風霽月之無邊
思慮淸明長天秋水之相暎 1779年 磐石坊
天彛地紀限西東 暮壑虹橋唵靄中
一炷心香書共火 遙瞻潮廟祭文公 1785年 磐石坊
月落在天水上池盡 1801年 西小門
丁若鍾(1760~1801)
主敎要旨 1799年 漢陽
聖敎全書 1800年 漢陽
2012년 8월 5일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誕生 250周年 紀念 詩文碑
韓國天主敎會發祥地天眞菴聖地委員會 立碑

<右側面>

其學(天學)大抵異於孔孟之學 一七九一 刑曹
權日身(1742~1792)

<左側面>

양근고을 갈산(葛山) 권쳘신이 령셰하니, 본명은 암보로시오-라
열심슈계함으로 치명의 아름다온 화관을 밧으니라
一九0六 寶鑑 대한셩교사긔 一券 五二面
權哲身(1736~1801)

문도공 요한 정약용 승지(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탄생 250주년 기념일!
기념일!
.
오전 11시: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념 詩碑 제막식,
낮 12시: 경축미사,
오후 1시: 경축회식!.


어린시절부터(昔我童時遊) 이벽 성조를 사사(師事)하며, 약 10여년 이상(1776~1784) 修學하던 정승지의 母校, 천진암 성지에서는, 정승지가 천진암 현장에서 지은 수많은 詩文 紀念碑 제막식이 있습니다.

천진암 현장에서 지은 정승지의 여러 詩文은 최초 少年으로 1776년부터 마지막 老年으로 1827년에 와서 3일간 머물던 때까지 , 모두 51년간에 걸쳐, 종종 천진암을 찾아와 머물며 현장에서 저작한 詩文이 모두 90여수, 7,000餘字에 이르는데, 처음부터 저 방대한 시문들 모두를 단 번에 다하기는 어려우므로, 이번에는 시문 제목과 저작 연대와 일부 주요 내용만이 비문에 담겨지겠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하면, 저 방대한 시문들 하나 하나 모두가 앞으로는 저작 현장 천진암 성지에 詩碑로 남아서, 우리의 스승이 되고, 거울이 되며, 우리 겨레의 정신문화를 온 세계에 알리는 얼굴이 될 것입니다.

365일, 24시간, 항상 흘러나오는
天眞菴 氷泉水처럼, 또, 天眞山 메아리 처럼, 오늘의 우리와 내일의 후대들에게 순수하고 진솔하며 소박한 詩文碑 건립을 위하여, 뜻있는 분들의 참여와 협력을 기다립니다.

<천진암 성지에서 卞基榮 몬시뇰>

* P.S. 漢文에서 童時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10세 이하를 뜻하며, 11세부터는 少年이라 하고, 장가를 들기 시작하며, 정약용 승지는
15세에 결혼을 하였는데, 그것은 형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좀 늦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정약용 승지는 1770년 경(8세)부터 천진암에 자주 놀러 왔거나, 젊은 이벽 성조께서 가르치는 天學堂이라할 수 있는, 절간의 서당에서 공부하였음을 알 수 있으니, 이를 회고하며 추억하는 詩文이 늙으막 65세 때(1827년) 천진암에 와서 지은 天眞消搖集에 여러 대목에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 <현대인들이 알기 쉽게 몇 줄만 추려서 譯述해본다면,>
石徑細如線. 천진암 오르는, 바윗돌 사이로 난 이 오솔길은,
昔我童時遊. 내가 어린 아이 때 까불고 오르내리며 놀던 길이지 !
豪士昔講讀. 여기는 호걸스러운 선비들이 講學하며 讀經하던 곳인데,
前躅凄迷不可求. 그 옛날처럼 그 생활, 다시는 해볼 수 없으니 한이로세!
禪房無處舊人求.
참선하는 방에서 기도하던 옛 친구들 모두 사라졌으니,
이 세상 어디를 간들 그런 벗들을 구해올 수 있으랴?
粥鼓斜陽念舊游.
저녁 죽 먹으라고 치던 북소리, 해질렼에 같이 놀던 옛 동무 생각나네!
我欲來此住. 천진암에 아주 와서 살고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無人示方便. 아무도 나에게오고 가는 방도와 머물 곳을 마련해 줄 사람 보이지 않네.
三十년來重到客.이제 30여년만에 나도 나그네가 되어 다시 와보니,
猶然苦海一孤舟.
그 때나 이 때나 역시 나는 괴로운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조각 배 한척의 신세로다!
,,,,, Msgr. Byon
<전면>

文度公 요한 丁若鏞 承旨 誕生 250周年 紀念 詩文碑

시문 저작 연도와 장소
丁若鏞 (1762~1836)
贈李檗 1777年 天眞菴
同友人李德操檗乘舟入京 1784年
斗尾
友人李德操輓詞
1785年 花峴
端午日陪二兄游天眞菴
1797年 天眞菴
早起 1797年 天眞菴
山中感懷 1797年 天眞菴
寺夕 1797年 天眞菴
游天眞菴記 1797年 天眞菴
中庸講義補 1814年 康津
先仲氏墓誌銘
1816年 康津
鹿菴權哲身墓誌銘 1822年 馬峴
自撰墓誌銘 1822年 馬峴
天眞消搖集 1827年 天眞菴
蔓川遺稿跋文
1830年 馬峴
李檗傳 1833年 馬峴
朝鮮聖敎史記 1833年 馬峴
2012년 8월 5일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誕生 250周年 紀念
韓國天主敎會發祥地天眞菴聖地委員會 立碑

<後面>

李檗(1754~1785)
權相福文集跋文 天學考 1773年 天眞菴
上天道 1778年 봉점사춘파대
聖敎要旨 1778年 天眞菴
天主恭敬歌 1779年 天眞菴
崇禮義 1779年 天眞菴
天主密驗記 令得敬神記 險世聞得記,
來世預言記,天堂地獄記 1785年 水標洞
巫峽中峯之勢死入重泉
銀河列宿之年錦還天國 1785年 花峴

李承薰(1756~1801)
襟懷灑落光風霽月之無邊
思慮淸明長天秋水之相暎 1779年 磐石坊
天彛地紀限西東 暮壑虹橋唵靄中
一炷心香書共火 遙瞻潮廟祭文公 1785年 磐石坊
月落在天水上池盡 1801年 西小門
丁若鍾(1760~1801)
主敎要旨 1799年 漢陽
聖敎全書 1800年 漢陽
2012년 8월 5일
文度公 若望 丁若鏞 承旨 誕生 250周年 紀念 詩文碑
韓國天主敎會發祥地天眞菴聖地委員會 立碑

<右側面>

其學(天學)大抵異於孔孟之學 一七九一 刑曹
權日身(1742~1792)

<左側面>

양근고을 갈산(葛山) 권쳘신이 령셰하니, 본명은 암보로시오-라
열심슈계함으로 치명의 아름다온 화관을 밧으니라
一九0六 寶鑑 대한셩교사긔 一券 五二面
權哲身(1736~1801)

Writer : 천진암    Date : 2012-07-24 00:14   Hit. 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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