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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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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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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봉평 이효석 생가가는 길의 메밀꽃>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 6, 2)

오늘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지 기념일입니다. 축일을 맞으신 천진암 성지의 이 그레고리오 신부님을 비롯한 모든 교우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성 그레고리오 교황은 성 아우구스티노, 성 암브로시오, 성 예로니모와 함께 교회의 4대 학자 중의 한분입니다. 어려서 부터 신심이 깊고 성덕이 출중했던 그레고리오는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많은 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며, 아버지의 사후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자신은 시칠리아 섬에 6개의 수도원을 세우고 평생 수도자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로마 시미들의 청원에 의해 교황이 된 성 그레고리오는 외적으로는 로마를 침공하는 욎적을 막아내고 교회 내적으로는 각종 이단들을 물리치고 전례 성가를 집대성하신 분입니니다. 교황이 되신 후에도 매일 당신의 식탁에 12명의 가난한 이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며 가난의 구제에 힘썼으며, 성인께서 책을 집필할 때에는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그의 귀에 속삭이는 모습을 보았다고 교황을 모시던 부제가 이 내용을 전하고 있어 성 그레고리오의 성화에 비둘기의 모습이 그려진 것은 이런 중언에서 기인된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였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마음을 열게 하는 방법으로써, 그리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방법으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고수하고 지키는 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율법에 얽매이게 되고 율법이라는 사슬에 스스로 묶이게 됩니다.

이들은 어제는 단식을 가지고 예수님께 따지더니 오늘은 안식일 법을 가지고 따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밀밭 사이를 지나가면서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었다는 것을 보고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하면서 항의를 합니다. 별 것 아닌 행동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대수롭지 않은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손으로 비벼서 밀을 먹었다는 것은, 결국 율벙에 의하면 추수와 타작이라는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해석, 자신의 주관이 담긴 해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을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삶 안에서도 이렇게 극단적인 해석으로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행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내 뜻대로 그 사람이 했을 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황금율.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정표는 길잡이일 뿐입니다. 강을 건넌 다음에는 뗏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유대교의 단식과 안식일, 그리고 제사는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길잡이였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데 지녀야 할 진솔함, 올바른 삶의 모습이 그들의 행위 즉, 단식과 기도 그리고 제사로 표현될 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만남으로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그 자체로 새로운 삶을 얻었고 그것이 우리들에게는 구원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지나친 율법에만 억매여 나의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얻은 자유를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선택만이 남아있습니다. 겉치레를 중시하며 남들의 평가에만 마음을 두는 우리의 모습과 참된 사랑의 체험으로 기쁨을 자아내는 새로운 십자가의 삶이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모두 기쁨의 삶을 선택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비움의 영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빈자리에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언제나 나의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채워서 생활했으면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여러 가지 규칙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6-09-0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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