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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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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사순 제 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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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예루살렘 실로암 샘>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주님, 저는 믿습니다."(요한 9, 35, 37)

젊은 시절엔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깨알 같은 글씨를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0대 중반에 이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경을 써야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습니다. 50줄에 들어서면 점점 더 안경알의 두께가 찐빵처럼 두꺼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먼데 있는 것은 잘 보이는데, 가까이에 있는 것이 잘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이가 들면 자기 자신만 보지 말고, 먼데 있는 이웃을 살펴보고 그들을 걱정하고 살라는 하느님의 섭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눈을 내리 뜨고 자신만을 볼 것이 아니라, 멀리 저 하늘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살라는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기를 낳아서 키워본 어머니들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기들은 태어나면 눈을 감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눈을 손으로 가리면 갓난아기가 눈을 살포시 뜹니다. 그리고 손을 치우면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아 버립니다. 하지만 이렇게 갓난아기는 눈을 뜨긴 뜨지만 사물을 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00일이 지나고 돌이 지나면서 무엇인가를 보게 되고 또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분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돌 지난 아기를 낯선 사람이 안으면 왕~하고 울어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점점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고 관심을 넓혀 나가고 서서히 인생관을 지니고 가치관을 지니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은 마지막까지 눈을 떠가야만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은 강을 거슬러 노를 저어 가는 것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노를 저어야지만 앞으로 나아가든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든지 하지, 가만히 있으면 뒤로 떠 밀려 가기 때문입니다.

본당에서 사목을 할 때 교우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이런 것이 있습니다.

"신부님, 저는 한다고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발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예전에는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사업이 어렵고, 가정이 힘들다 보니 성당 생활에 조금 게을러졌습니다. 요새는 미사에 나오기도 싫고, 그러다 한번 빠지다 보니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계속 빠지게 됩니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인들 중에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먼데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확신이 아직 안 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외적으로 성당에 수 십년 다니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성당에 여러 직책을 맡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결코 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외적으로는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과정이 있고, 단계가 있습니다. 나비가 처음부터 나비인 것은 아닙니다. 알에서 깨어나서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는 과정을 지나야 되고,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애벌레가 곧 바로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태중 소경을 만납니다. 소경은 어두움만을 보다가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세상의 빛만이 아니었습니다. 소경은 세상의 빛만을 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빛도 함께 보게 된 것입니다.

처음 사람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라는 질문에 소경은 예수님이라는 분이 눈을 뜨게 해 주었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라고 묻는 바리사이들의 물음에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님, 저는 믿습니다.”라고 과감하게 대답합니다. 소경은 세상의 빛을 통해 사물을 보게 된 것뿐만이 아니라 이제 영적인 눈으로 자신 앞에 서 있는 예수님이 바로 주님이심을 알아본 것입니다.

반면에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바리사이들의 모습은 소경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소경이 눈을 떴다는 사실에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고 급해집니다. 안절부절 하지 못해 안달이 났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소경의 눈을 낫게 해 준 예수님이 죄인임을 밝히려고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경은 참으로 마음이 여유롭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스스로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그리고 닫힌 마음으로 새로운 어떤 존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게 된 소경은 그런 선입견이 없었고 편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닫혀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경은 과감하게 눈을 뜨게 해 준 그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고백하고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끊임없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닫힌 마음으로 외면해 버린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웃을 우리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외면하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나면 모든 사람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찾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경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눈을 뜨게 된 소경은 신변의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종교 지도층인 바리사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자신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거짓보다는 진실을 택할 수 있는 마음,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실천하는 생활, 이것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경의 모습을 통해서 배워야 할 점입니다.

이런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빛의 열매인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빛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로운 사순절 동안 내가 만나는 이웃들 안에서 예수님의 따스한 얼굴을 찾을 수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그리고 소경과 같은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7-03-2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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