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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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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사순 제 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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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 부활성당 외부>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오 18, 35)

고해성사를 주다보면 자기 죄를 고백하기보다는 오히려 남들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다고 하는 고백을 많이 듣게 됩니다. 자기의 죄에 대하여 물귀신처럼 남을 물고 들어갑니다. 나의 죄는 오직 상대방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따져보면 남에게 탓을 돌리는 사람들은 용서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고, 더 나아가 죄를 뉘우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으로 용서받기 위해서는 나의 죄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 탓이오 해야지, 네 탓이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용서를 한다는 것, 이것은 나약하게 무조건 참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듯이 우리도 이웃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악에 굴하지 않고 선을 이겨내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요한 알베르또 성인은 자기 형을 죽인 원수와 산골의 막다른 길에서 마주쳤다고 합니다. 그를 보고 단칼에 죽이려하자 원수가 양팔을 벌리고 용서를 청하는 모습이 예수의 십자가의 모습과 같아 용서를 해주고 성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용서는 사랑이 머무는 곳, 하느님의 자비가 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이 있고, 내 마음에 하느님의 자비가 있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가 있는 곳에는 새로운 삶이 있고 자유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들은 말이 네 죄는 용서를 받았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용서가 없는 곳에는 미움과 증오, 죽음과 파멸만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의 말씀을 통해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임금으로부터 자신의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종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 빚은 평생을 두고 갚아도 다 갚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에 비하면,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저지른 범죄를 통하여 우리가 당한 어떤 고통, 아픔, 모욕도 티끌이나 먼지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께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진리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하느님께 대한 빚은 갚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단순히 내 기분을, 비위를 상하게 한 사람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내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인색하고 엄격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아직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하느님은 꼭 기억하실 것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7-03-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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