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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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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사순 제 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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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 부활성당 내부 지성소>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오 21, 43)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경의 한 점치는 노인에게 말이 있었는데 말이 도망가자 동네사람들이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슬퍼하지 않고 담담하기만 합니다. 얼마 후에 도망간 말이 오랑캐들의 준마를 데리고 오자 이번에는 동네 사람들이 와서 축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 아들이 떨어져 다치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위로하지만 노인은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에 전쟁이 나고 마을의 모든 젊은이들이 끌려 나가 모두 죽고 이 노인의 아들만 살아남게 되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와서 축하하지만 그래도 노인은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일 뒤에는 틀림없이 하느님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보면 정말 하느님이 계신가?’하는 의심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누가 보아도 악하게 사는 사람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행복해 보이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은 가난에 찌들려 허덕이는 삶을 살아 불행해 보일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왜 하느님이 나만 미워하고 나에게만 고통을 주시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뒤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창세기의 저자는 꿈쟁이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늦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인 야곱 역시 그러했습니다. 늦둥이로 얻은 요셉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형들을 질투나게 했고, 급기야는 죽이려고 까지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르우베의 이야기를 듣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가, 이스마엘인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오늘의 독서는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는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재상이 되고 아버지 이스라엘이 살던 지방에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양식을 구하로 온 형들의 과거 잘못을 용서합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복음에서 우리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경작하고 있는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악을 저지릅니다. 주인의 종을 죽이고 더 나아가 상속자인 아들까지도 죽입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하느님은 끝까지 인내하시며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어찌 보면 하느님은 인간들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소작인들은 외면합니다. 마음속에 가득 찬 질투, 소유욕, 명예욕으로 인해서 반성하지 않고 더 큰 악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소작인들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소작인인가요? 복음에 나오는 소작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하느님은 지금도 나의 사랑을 구걸하고 계십니다. 그런 하느님께 진정으로 나는 사랑을 드리고 있는지요?

어떤 아버지에게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아들은 T.V와 만화책에 빠져서 성적이 떨어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느낀 아들은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묻자, 아버지는 모래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아들 앞에 놓고 냉장고를 열어 과일을 꺼내어 넣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득 찬 모래 때문에 과일을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른 잡다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면 하느님의 뜻을, 예수님의 말씀을 넣기는 불가능합니다.

사순절은 내 마음의 가득 찬 잡다한 악한 생각들(나의 고집, 욕심, 탐욕......)을 비우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채우는 시기입니다. 더 이상 하느님을 인간의 사랑을 구걸하는 하느님으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악을 악으로 갚으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길로 이끄시려고 하염없이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고 기억하며 나 자신의 잘못 된 생각을 바로 잡고 생활하는 사순절은 만들기를 희망해 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7-03-1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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