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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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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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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 제 11처, 12처 :못 박히시도 돌아가심>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 36)

우리는 마태오 복음에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들었고, 오늘 루가 복음에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믿는 하느님은 "완전하신 아버지",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는 그분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품성을 이어받습니다. 즉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따라서 내가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라면 나에게 완전하신 아버지, 자비로운 아버지의 품성이 나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 하느님을 닮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씀은 자비의 근원이 "너희가" 아니라 "너희의 아버지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즉 자비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비의 근원은 너희가 아니라 너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나 혼자서는 안 되는 것이고 반드시 자비의 원천이신 아버지와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즉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비의 원천이신 아버지로부터 자비의 선물을 받아야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사람도 비록 당신을 배반하는 제자일지라도, 당신을 향하여 욕하고 침 뱉고 창으로 찔러대는 병사들도, 당신을 사형에 처하는 빌라도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단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가 23,34)라고 끝까지 용서하시고 마침내는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의 마음에는 한없는 자비로움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느님은 자비로움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하나의 원칙이 세워졌다면 이 원칙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이 나와야 합니다. 그 다음 말씀은 바로 이런 원칙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제시해주신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남을 심판하는 일과 단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용서하고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남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아야 하는가요?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자비로운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남을 제대로 심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남을 심판할 때 그 심판의 기준은 자비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심판하고 단죄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을 심판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고 심판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잘못 단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심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심판은 인간의 몫이 아닙니다. 심판은 완전하신 아버지만이 올바르게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심판과 단죄가 아니라 용서와 베푸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잘못 심판하고 단죄함으로써 내가 받는 고통과 억울함이 많이 있듯이,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을 잘못 심판하고 단죄하였기 때문에 용서받아야할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심판과 단죄가 아니라 용서와 베푸는 일입니다. 그것이 곧 나의 잘못을 끊임없이 용서해주시고 베풀어 주시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며 이런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고 실천하기를 희망해 봅니다.

*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에서 제 11처와 제 12처는 같은 장소입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라는 말은 예루살렘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뜻합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7-03-1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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