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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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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사순 제 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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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 제 10처 : 옷 벗김을 당하심>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오

17, 2)

우리는 매일 그리고 자주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거울 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느새 이렇게 늙었지 하는 한숨이 나올 때가 연세가 많은 분들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변화하느냐는 것입니다. 좋은 모습으로 변하며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의 모습보다 더 추하고 볼 상 사나운 모습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악마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제일 고심했던 인물은, 예수님과 유다의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다빈치는 당시 성당의 아주 열심한 청년 성가대원인 베드로 반디네루를 예수님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얼굴을 찾기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세상 욕심에 일그러지고 배신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그 얼굴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고.. 그러던 어느 날, 로마 거리에서 그 얼굴을 찾았습니다. 화실에 데려와 살펴보니 낯이 익어 전에 알던 사람 같았기에 이름을 물었더니, 그 사람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당신은 전에 나를 모델로 하여 그린 적이 있습니다. 내가 바로 베드로 반디네루입니다.” 그처럼 맑고 밝았던 예수님 얼굴이 그동안의 교만과 방탕으로 유다 같은 얼굴로 변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아야 될 것도 있어야 하지만, 변해야 한다면 보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도중에 당신의 모습이 변화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볼 수 없는 천상의 모습으로 변화되셨다는 것입니다. 신앙인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모습으로 변화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에 그리고 꿈을 꾸던 그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그런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요?

복음을 믿고 따르고 실천할 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모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믿지 않을 때, 우리는 아무에게도 자신이 신앙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요, 대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합니까?

먼저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는 동안 그 모습이 변모하셨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인간이 하는 노력이고 행위입니다. 결국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변화를 위함이지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변화해 달라고 청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기도 속에는 내 자신보다는 하느님을 변화시키거나 설득하려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람은 지독하게도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만이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것입니.

두 번째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부유하고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고 있던 75세의 늙은 족장에게 이것은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잃어버린 자유와 인간성을 회복하여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가지고 있던 편견과 욕망과 재물과 명예를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느님을 만나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화되었고 지금까지 모든 신앙인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소개된 베드로 사도처럼 순간적인 자기만족과 편견에 사로잡혀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 안주한다면 인생을 전체적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내가 이루어 왔던 삶의 모습들로부터 온전히 떠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과연 나는 아브라함과 같은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기보다는, 내 자신의 아집과 편견으로 이루어진 모습만을 이루기 위해 변화되기를 거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순 두 번째 주간에는, 내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꾸준한 노력을 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했으면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이 사순절에 우리 모두 거울 옆에 예수님 얼굴을 붙여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거울을 불 때마다 예수님 얼굴에 내 모습도 비추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의 뒷모습까지도 거룩하고 아름다운지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이 물음은 지금까지의 나의 얼굴이 나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어떻게 변모하여 왔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앞모습뿐 아니라 뒷모습까지도 거룩한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반성의 기도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남에 대해 뒷말을 하지 않았는지? 자존심으로 모이고 열등감으로 뒤틀리지는 않았는지? 이런 것들을 반성해 보고 잘못된 것을 고치는 삶이 되었으면 하고 희망해 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7-03-1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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