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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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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연중 제 7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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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방 비엥 쏭강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코 10, 14)

어린 아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엄마가 곁에 있을 때와 없을 때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엄마가 없으면, 마음이 흐트러져 불안해하고 여기 저기 눈길을 돌리며 엄마를 찾습니다.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드디어는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런데 엄마가 곁에 있거나, 또는 엄마가 옆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만사태평입니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때로는 엄마가 있는 것도 모르는 것 같이 놀이에 열중합니다. 그렇다고 아기가 곁에 있는 엄마를 잊고 노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가 돌아보지 않더라도 엄마가 계속 자기 곁에 있음을 느낍니다. 아기는 엄마의 지속적인 보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기는 걱정 없이 지내게 됩니다.

우리와 하느님, 그리고 예수님과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아기와 엄마 사이의 이러한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 주신 하느님 아버지와 깊은 관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참모습을 보여 주시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신 예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창조주 아버지와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결국 우리의 한 주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위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과의 관계는 결국 아기와 엄마 사이의 관계 이상이 됩니다. 바로 이러한 예수님께서 곁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근심 걱정을 그분께 맡겨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는 이와 근심걱정, 믿는 이와 불안 공포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믿음은 전적인 신뢰입니다. 신뢰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모릅니다. 그래서 구약성서의 신앙인들은 시편을 통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시편 27, 1)

다시 아기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엄마 손을 붙잡고 가는 아기는 아무런 근심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라도 전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엄마가 알아서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기가 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아기는 첫째, 엄마 손을 꼭 잡아야 합니다.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엄마를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엄마와 연결하는 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곧 엄마와 항상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아기는 부지런히 걸어야 합니다. 계속 뒤를 돌아본다거나, 걷기 싫다고 칭얼대면 안 됩니다. 아기도 아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이 두 가지를 열심히 할 때, 걸어가는 것이 아기에게는 즐거운 나들이, 목표를 향한 기쁜 여행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손을 꼭 잡고 그분과 함께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계속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은 우리에게 즐거운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에게 목표에 도달하는 확실한 기쁨과 생명의 길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신 분들이 이곳 천진암에 묻혀 계신 창립 선조들입니다. 1779년 겨울 한밤중, 광암 이벽 선생님께서 이미 이곳 천진암에서 강학회를 열고 계시던 분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밤새 촛불을 켜놓고 진리를 찾기 시작하셨습다. 그분들은 당시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몇 권의 서학서 - 천주실의, 칠극 -등을 통하여 빛이신 예수님의 진리를 탐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예수님의 손을 잡고 그 길을 따라가십니다. 예수님의 손을 놓지거나 칭얼대지 않았고 오로지 엄마를 따르는 어린아이처럼 그 분만을, 그분의 가르침만을 따라 살아가셨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양천제도가 엄격한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사람을 형제로, 자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양반 계급에 속한지 않은 사람들도 형제로, 자매로 부르며 사랑을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시편 27, 1)

사회의 어떤 질시도 비난도 시편 저자의 기도처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예수님의 손을 놓지 않고 순교의 길을 가셨고, 확실한 기쁨과 생명이 있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셨고 진리이셨고 생명이심을 굳게 믿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나는 신앙인으로 예수님의 손을 꼭 잡고 있는지? 그리고 그분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서 걸어가고 있는지? 반성해 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7-02-2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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