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眞菴聖地

바로가기메뉴
주메뉴바로가기
서브메뉴바로가기

유틸메뉴


주메뉴


서브메뉴

삶의 꽃자리

  • 삶의 꽃자리
성금 봉헌 안내시복시성 추진성지안내 조감도

본문내용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본문이미지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유리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오 11, 30)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축일을 맞으신 모든 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인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예로니모, 성 그레고리오와 함께 초대 서방 교회의 교부 중의 한분이시다.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나신 성인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로마로 가서 공부하고 관직에 오르신 후 밀라노의 재판관이 되어 백성들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 주신 분이다. 당시 밀라노의 주교가 서거하여 후임 주교의 선출을 놓고 아리우스 이단과 신자들 사이의 다툼으로 인하여 폭동이 일러날 조짐이 있어 그것을 해결하러 갔다가 시민들에 의하여 주교로 추대되신 분입니다. 그때 까지 세례도 받지 못하여 단기간 내에 세례와 신품성사를 받고 밀라노의 주교가 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주교직에 오르신 후 기도아 교리공부, 자선 사업에 전념하신 분이십니다. 특히 순교자들에 대한 공경의 마음이 탁월하신 분이셨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분들을 애정과 친절로 대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찾아와 도움과 교훈을 청하였다고 합니다.

성인의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만 소개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개입니다. 성녀 모니카도 그에게 와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눈물로 청했습니다. 그래서 암브로시오는 그녀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런 눈물의 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 예언은 적중되었으니, 얼마 후 아우구스티노는 암브로시오의 설교를 듣고 그와 대화하는 사이에 회개해 뒷날 위대한 성인이 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시 로마의 황제는 테오도시우스 1세였는데, 테살로니카인들이 로마 총독을 살해하고 황제의 초상을 훼손하며 모욕스러운 행동을 보이자 군대를 보내어 모두 살해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성인께서는 황제의 성당 출입을 금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예수 부활 대축일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성당에 온 황제를 가로막고 진정한 회개의 마음 없이는 성당에 들어 올 수 없음을 알렸고, 결국 황제는 그의 잘못을 마음으로 뉘우치고 "나는 죄의 용서를 얻으려 합니다. 주교여! 주 예수의 무한한 자비를 생각해 나를 성당에 들여보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하고 겸손한 태도로 간청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자 주교는 "그러시다면 보속으로 무엇을 하시렵니까?"하고 물었고, "무엇이든지 주교께서 명하시는 대로!" 이 말에 암브로시오도 그의 통회의 정이 진실됨을 알고 가벼운 보속을 명하고 성당에 들어감과 성사 받기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암브로시오의 권위가 더욱 빛났고, 또 황제의 겸손지덕은 한층 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때 성인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황제는 교회 안에 있다. 그는 교회 위에 있을 수 없다.”

또한 성인의 기록을 보면 자신의 최후도 다가왔음을 예지하고, "내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어찌 이리 많이 남았는지! ! 주여, 어서 빨리 오소서. 지체치 마시고 저를 거절치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오히려 버리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버리는 것을 주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 분명히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그런 행동하기를 힘들어합니다. 단지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해야 하는데."라고 말할 뿐은 아닌지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멍에는 달구지나 쟁기의 체를 잡아매기 위해 소나 말의 목에 가로 얹는 나무를 일컫는다고 사전에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멍에 자체가 짐이 아니고 짐을 지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며, 또한 어떤 일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준비태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짐은커녕 멍에만 메고도 비틀거릴 정도의 무게로 멍에를 만들었다면 얼마나 멍청한 사람일까요? 그런데 이 멍청한 사람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 놀랍지 아니한가요?

요즈음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는 말을 많이 듣고,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현실을 뚫고 나갈 방도를 구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점집도 찾아가고 무당도 찾아갑니다. 언제인가 어떤 신자가 하도 되는 일이 없어서 무당을 찾아갔더니 집에 귀신이 많아서 부적을 붙여야 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했는데 계속 마음이 찜찜해서 부적을 떼려고 하니 이번엔 부적은 스님이 태워버려야 탈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절에 찾아가 태워버리기는 했는데 그래도 왠지 신부님이나 신자들이 와서 기도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고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우왕좌왕 하고 허덕이고 비틀거리는 우리 허약한 인생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인간사 좁은 영역에만 매어있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라.","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고,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시는 분"이며, "힘이 솟구쳐 피곤을 모르시고, 슬기가 무궁하신 분"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하느님께 가는 것 역시 나를 버려야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편히 쉬고,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바로 당신의 삶(온유와 겸손)을 배워서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삶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인간적으로 보면 약간은 모자라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 자기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사랑과 희생을 나눠주는 삶이었습니다. 늘 손해만 보는 삶이었습니다.

대림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정말로 기쁜 성탄, 예수님의 탄생하심에 감사하는 성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삶을 따라 우리들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로 편안한 안식을 예수님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나의 짐은 나를 너무 가볍게 만들지도 않고, 짓누르지도 않는 진정한 길동무요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6-12-06 22:30
다음글 :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이전글 : 대림 제 2주간 화요일
우리나라천주교회창립사
천진암성지 소식지(2019년 1월호)
ebook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