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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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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위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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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벽 밖의 유다인들의 무덤 - 유다인들은 부활을 기다리며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에 묘지를 쓰고 있다.>

"고생하며 무더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오 11, 28)

위령의 날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그 분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교회에서 이런 위령성월을 정한 것은 반드시 돌아가신 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서 똑바로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기에도 급급한데 죽은 뒤의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조금 사치스러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라는 격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것은 과정이요, 죽는 것은 결과라고 본다면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령 성월을 지내면서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먼저 죽은 이들을 생각하고, 또 머지않아 닥칠 우리의 죽음을 묵상하고 준비합니다. 죽는다는 것 참으로 고통스런 일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수용하기 힘든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 곧 죽음입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일 것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의 그 부드러웠던 음성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 아름다운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참으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욱 고결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죽음은 신비요, 진리이며, 은총입니다.

무속 신앙인들이나 사이비 종교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 피하고만 싶은 것, 껄끄러운 그 무엇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아주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죽음은 오히려 감사의 원천이요, 은총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모순된 말이지만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늘 옆에 끼고 살아가야 할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합니다. 죽음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아름답고 고결하며 준비된 죽음을 위한 가장 필요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죽음의 준비는 바로 오늘을 충만히, 충실히 사는 것입니다. 오늘을 거룩하게, 오늘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성실히, 최대한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죽음의 준비일 것입니다.

과정을 잘 살면 결과도 좋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를 잘 살지 못하면 죽음 뒤의 삶도 좋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잘 살지 못한다면 내일도 결과는 뻔합니다. 결국 잘못 되고 말 것입니다. 생전의 삶의 모습이 성인일 때 하느님 나라에서도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오늘 천국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내일 갑자기 행복하게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현인이 말한 대로 죽음에 대한 준비는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훌륭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어느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이 교수에게 죽음을 앞에 두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였을 때 그 교수는 흑판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라!”(Do it now)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죽음을 생각하면 현재의 나를 개선할 수, 변화시킬 수 있습니. 왜냐하면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며, 죽음으로써 삶이 완성되는 것이고 그래서 죽음은 영원한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말씀에 나의 삶의 뿌리를 심었으면 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또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었을지라도 살아날 것이요, 무릇 살아서 나를 믿은 모든 이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또한 위령성월에 특히 연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함께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삶의 모습은 1) 연옥 영혼에게 도움이 되고, 2) 자신의 성화에 도움이 되고, 3) 하느님께는 기쁨과 영광이 됩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와 희생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는 유익한 일이고,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축복의 순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6-11-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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