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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강학

  • 천진암 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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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강학
  1. 천진암 강학


삼천년기 복음화를 위한 평신도의 역할과 방향
새천년 복음화 연구소 제16차 심포지움
새천년 복음화 연구소 심포지움
삼천년기 복음화를 위한 평신도의 역할과 방향
김동원 신부 2016.10.22
들어가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에 따른 제삼천년기의 복음화”라는 주제로 제16회 심포지엄을
개최하시는 새천년복음화연구소의 조영동 연구소장님을 비롯한 봉사자 여러분들의 열성과
노고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 논문에서 복음화를 위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삼천년기의 세계 상황에
대해 간단히 짚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벽 선생을 비롯한 선비들이 스스로 진리를 연구하고
실천하며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바쳐서 세운 초기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 삼천년기의
복음화를 위한 방향을 찾고, 그에 따른 실천 사례와 방안을 제시하며, 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하시는 여러분들에게 다소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주제에 대한 개념 성찰

1)삼천년기 상황과 과제
우리가 살아가며 선교하고자 하는 삼천년기의 세상은 어떠한가?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물질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대중매체가 급속하게 확산되며 사람들의 관념과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고 있다.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유행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온갖 사건이나 테러와 전쟁 소식은 전세계에 불안과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중매체에 의한 정보의 홍수로 말미암아 ‘무관심의 세계화’ 현상을 지적하였다. 소비와 쾌락을 자극하는 물질문명의 풍요와는 상반되게 정신의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복음화는 충분한 영성적인 자양분을 제공해야 할 과제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청년들의 취업난으로 인한 결혼기피와 저출산, 노인층의 고령화의 문제로 인해 국가의 생존마저 걱정하는 상황이다. 세대간의 사고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대화 단절은 개인주의화와 소외현상을 빚어내며 공동체의 와해를 가속시키고 있다. 복음화는 단절되고 소외되어 가는 세대를 통합하는 공동체의 문화를 건설하는 노력을 요청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그 심각성을 지적하였듯이 화석연료의 지나친 사용으로 지구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환경오염이 나날이 심각해지며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다. 생명경시와 자연파괴에 대하여 복음화는 창조주께서 주신 지구의 환경보호와 생명존중의 문화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다.

또한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소득분배의 불균형으로 인한 극심한 계층간의 양극화 현상과, 급진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인한 국제적 경쟁과 갈등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남북한은 분단 70년이 되어가도록 화해와 통일의 길은 요원하고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인해 민족의 생명과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중국의 패권 확장으로 주변국들과 영토 분쟁과 갈등이 고조되며, 생존과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교회의 복음화 노력은 지역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진행되는 삼천년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삼천년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복음화할 것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의 다양하고 복잡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복음화는 역시 평신도들이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평신도 사도직의 확장을 요청하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오늘날의 상황은 더욱더 활발하고 광범위한 평신도 사도직을 요청하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인구, 과학기술의 진보, 더욱 긴밀해지는 인간관계 등은 평신도 사도직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켰다. 그 영역은 대부분 평신도만이 다가갈 수 있다.” 1)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발표한 『교회의 선교사명』에서 불확실한 현대의 상황에서도 시대의 징표를 발견하며 희망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현대는 극적이면서도 매력적입니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물질적 번영을 추구하고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에 더욱 빠져 들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필사적으로 의미를 추구하고, 내면생활을 갈구하며, 명상과 기도의 새로운 형태와 방법을 배우려는 열망으로 가득합니다. 종교적 성향이 강한 문화에서뿐만 아니라 세속화된 사회에서도 인간성 상실에 대한 처방으로 삶의 영적 차원이 추구되고 있습니다.” 2)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삼천년기를 맞이하면서 1994년 발표한 『제삼천년기』는 이미 평신도들이 복음에 따라서 자신을 바쳐 헌신적으로 세상의 온갖 문제를 풀어가며 변화시켜 가는 주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 역할에 기대와 희망을 보이고 있다.  
“모든 교회들이 제3천년기의 문턱에서 그리스도께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공경은, 다양한 형태의 그리스도인 소명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랐던, 수많은 언어와 인종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에게 현존하는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결실을 통해 구세주의 전능하신 현존을 드러내는 일일 것입니다. 2000년을 준비하면서 바로 우리 시대에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라 살았던 이들의 성덕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보편교회를 위해 순교록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사도좌의 과업일 것입니다. 특별히, 혼인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소명을 따라 살았던 남녀들의 영웅적 덕행에 대한 인식을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사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을 바쳤던 많은 평신도들은 복음을 통해서 세상의 숱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였듯이, 새로운 삼천년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복음을 믿고 실천한다면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복음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갖게 한다.

2)복음화 개념의 발전
복음화를 가리키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시대 상황 안에서 교회가 다양하게 사용하여 왔는데, 전교(傳敎), 전도(傳道), 선교(宣敎), 복음화(福音化),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으로 발전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전교(傳敎)는 ‘가르침을 전한다’는 뜻인데, 제도교회 중심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래서 비신자들을 교회 안으로 개종 입교시키는 구체적인 활동에 중점을 두며, 수적으로나 양적으로 교세 확장을 강조하면서, 역사적으로 유럽의 식민지 개척 활동에 편승하여 제국주의적인 교회관을 담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전도(傳道)는 ‘도를 전한다’는 뜻으로 개신교에서 주로 사용되며 흔히 전도사라는 직무를 세워서 적극적으로 전도활동에 전념하는데, 한편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공격적이고 양적증가에 치중하여 비판을 받고 있으나, 그 열성만큼은 본받을 만하다고 하겠다.
한편 선교(宣敎)는 ‘가르침을 베풀다’ 혹은 ‘가르침을 밝히다’는 뜻으로 교회 안에서 본래의 복음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닌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4) 선교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교령」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교회에서 파견된 복음 선포자들이 온 세상에 가서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민족과 집단에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 자체를 심는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 활동을 일반적으로 ‘선교’라고 한다.”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펼쳐온 선교활동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성찰하면서, 전교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교회중심적인 관념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복음화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중심의 선교론에서 하늘나라 중심의 선교론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10주년을 맞이해서 반포한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말씀과 행위와 삶에 따라서 인간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고 그 개념을 더욱 명시적으로 드러내었다.
“교회는 복음화가 인류의 모든 계층에까지 기쁜 소식을 전해주며,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고 하신 것과 같이 복음의 힘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례를 받고 또 복음에 따라 사는 삶으로 새로워진 새 사람이 없다면 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화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내적 변화이며, 한마디로 표현하여, 교회가 복음화한다는 말은,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거룩한 힘을 통하여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의 활동, 그들의 삶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복음화를 설명하는 가장 알맞은 표현일 것입니다.” 6)

한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3년 제19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정기 총회 연설에서 ‘새로운 복음화’ 개념을 처음 사용하였다. ‘새 복음화’는 복음화의 사명을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기존 신자들의 신앙 심화를 위한 ‘새로운 열정’, 냉담자들을 위한 ‘새로운 방법’, 비신자들의 선교를 위한 ‘새로운 표현’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식별의 노력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들 속에 하느님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이러한 분야들을 복음의 빛으로 비추며 그 안에서 시대 변화를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이고, 담대한 행동양식이며,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새로운 상황들을 읽고 해석하는 법을 아는 능력이다.” 7)

한편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서 교회중심주의를 거부하거나 반대로 걱정하는 경향에 대하여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는 하느님 나라에 이바지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이바지합니다. 특히 회개로 초대하는 교회의 설교를 통하여 그러합니다. 설교는 개인과 인간 사회 안에 하느님 나라를 오게 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교회의 첫째가는 근본 방법입니다. 종말론적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통하여 이미 현세에서 시작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12)” 8)

3)평신도의
신분과 정체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 제4장은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 품위와 역할, 평신도사도직, 교계와 평신도의 관계, 세상과 평신도의 관계에 대하여 천명하고 있다.
“(평신도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평신도들에게는 세속적 성격이 고유하고 독특하다.” 9)
여기서 평신도의 신분은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이 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평신도는 세상안에서 자기 몫을 실천하는 세속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서 평신도는 인간 구원에 봉사하는 신분이라고 설명하였다.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사명에서 맡은 자기 역할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한다. 평신도들은 복음화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도록 노력하여 실제로 사도직을 수행한다. 이렇게 평신도들은 그 활동으로 현세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증언하며 인간 구원에 봉사한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속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신도의 신분이므로 바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불타올라 마치 누룩처럼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았다.” 10)
평신도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일치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예언직을 수행하며, 자기희생과 거룩한 생활로써 죄의 지배를 물리치고 왕직을 수행한다. 그래서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정신으로 마치 누룩처럼 세속 안에서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며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복음화의 주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11)

이상과 같이 삼천년기의 세상의 상황에서 교회가 수행해야 할 복음화의 주체는 평신도로서, 그 방향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물질주의 시대에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심오한 영성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세대갈등과 빈부갈등을 겪는 사회를 통합하는 하늘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 문화를 건설하며, 생명과 환경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환경운동, 기아나 전쟁으로 갈등을 겪는 국제 관계에서 자비를 실천하고 평화를 세우기 위한 선교의 방향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2.한국교회의 역사에서 드러난 구원의 신비

1)한국교회의 탄생에서 드러난 삼위일체의 역사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다. 교회는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원천적 사랑’ 곧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성부께서는 ‘시작이 없으신 시작’이시므로 그분에게서 성자께서 나시고 그분에게서 성령께서 성자를 통하여 나오신다.” 12)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선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교회의 본질이라고 천명하였듯이, 구세사의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볼 때 복음화의 기원과 완성이 되는 삼위일체의 활동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드러난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업적은, 성화주 성령의 협력으로 계시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선교활동으로 교회가 탄생하고, 창조주이신 성부 하느님을 공경하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며,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담겨있는 지극히 성실하신 사랑과 구원 업적에 감동한 신자들이 스스로 생명을 바쳐 순교한 사실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1)성화주 성령
이벽 성조를 비롯한 선비들이 진리를 탐구하는 갈망으로 중국에서 들어온 한문서학서에서 논증된 계시진리를 치밀하게 연구하고 토론하는 강학을 통하여 만물의 기원은 천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며 자신을 수양하는 가운데 성령의 영감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기도에 전념하는 가운데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였던 장엄한 광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중국의 서양 선교사들이 저술한 한문서학서들이 180년간 조선으로 전해졌지만 신앙활동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성호 이익과 같은 대학자도 『성호새설』에서 한문서학서에 대한 서평까지 할 정도였으나, 신앙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성령의 활동과 영감은 창조주의 존재를 깨닫고 구세주 예수님의 복음을 믿도록 이끌어 주었으며, 온갖 장애를 이겨내고 스스로 선교하여 교회가 탄생된 역사는 성령께서 활동하신 증거를 드러내고 있다.

(2)구세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당대에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하고 거부하며 박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회개와 쇄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가정과 세상에서 반대와 거부와 박해의 십자가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외아들마저 내어 주시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그리스도를 따라서 자신을 바쳐 순교까지 불사하였다는 사실에서 성자의 죽음과 부활이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한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신을 품고 수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순교한 사실은 복음화의 완성이요 전형이라고 하겠다. 순교자들의 절대 다수는 평신도였다는 사실은 그들이야말로 복음화의 주체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한다고 하겠다.

(3)창조주 성부
만물의 기원과 신비에 대하여 질문하는 사람은 광대한 자연에서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창조주의 업적을 깨닫고 배우는 책과 같다. 창조주 하느님을 발견하고 믿게 된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大父大君으로서 공경하였다. 창조주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우주만물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하느님의 창조 업적을 깨닫고 공경하는 사람은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창조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러한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이벽 성조의 「聖敎要旨」에서 시종 사람들에게 자연에서 창조주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공경하며 영혼을 구원하여 하늘나라를 얻도록 힘쓰라는 내용으로 정향되고 있음을 보겠다.

2)「聖敎要旨」가 제시한 복음화
한국 교회 창립의 주역 광암 이벽(요한 세례자, 1754-1785) 성조가 저술한 「聖敎要旨」는 모두 49장의 漢詩로 쓰였는데, 당시의 선비들에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유가의 표현방식으로 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하였는데, 크게 세 주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편 성경의 가르침을 正道로써 제시한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로부터 신약의 묵시록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요약하여 저술하였다. 특히 하느님의 존재와 우주 만물의 창조, 인간의 탄생과 하느님의 금령을 위반함으로써 초래된 원죄를 설명하고 있다.
한편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서 질투와 미움과 살인으로 점철된 인류의 불행의 원인과 고통의 실상을 제시하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며 하늘나라를 향한 신앙의 길로 인도한다.

제2편 복음을 유가 경전에 따라 실천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소개하고, 유가 경전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中庸』에 나오는 誠의 정신을 인간이 하느님을 공경하는 합당한 자세로 강조하며, 『大學』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13)의 단계에 따라서 실천하도록 이끌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는 계명은 바로 至誠과 상통하고 있다.

제3편 자연에서 하느님의 창조 업적을 찬미하다: 인간은 자연 안에서 하느님 창조의 발자취를 새로운 눈으로 발견하고 찬미하며,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여 하늘나라의 구원을 얻도록 힘쓰기를 간곡히 권유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기 위하여 선포한 하늘나라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을 통하여 실현되고 완성된다는 진리를 역설하고 있다.

동양인에게 우주 만물의 근원을 먼저 밝히는 우주관은 인생을 살아가는 근본이다. 우주관으로부터 인생관을 이끌어 내고, 인간으로서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도덕수양론을 찾는다. 이벽 성조는 성경으로부터 하느님의 창조론에 기초한 새로운 우주관을 깨닫고, 신앙의 진리에 따르는 인생관과 구원의 은총으로 생활하기 위한 도덕수양론을 제시하고 있다.

(1)
수신(修身)
「聖敎要旨」제16장에서 선교대상이었던 선비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정신의 관점에서 修身을 설명한다. 수신은 제가와 치국과 평천하를 위한 근본이요 시작이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받은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기 위하여 학문을 탐구하는 가운데 가르침과 깨우침을 통해서 道에 밝아지고 道를 두루 퍼지게 되리라는 수신의 길을 제시한다.
量才託授    양재탁수    재능 따라 소임 주고
衛翼扶持    위익부지    도를 닦아 보호하며
詔戒誘誨    조계유회    가르치고 깨우쳐서
晝晩鑑玆    주만감자    밤낮으로 밝히도다
兒輩謳誦    아배구송    아이들은 글을 읽고
賦擇詩稽    부택시계    부와 시를 탐구하며
齒牙申講    치아신강    나이 따라 배움으로
遐邇均推    하이균추    道가 두루 퍼지리라

16장에 이어지는 17-22장의 내용에서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어 원죄를 씻어주고, 청년기에는 세속의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구원의 진리를 찾는 생활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의 사회계급이었던 사농공상의 고유한 신분과 환경에 따라서 복음을 실천하며, 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위해서 끊임없이 正道를 배우고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2)제가
「聖敎要旨」제23장은 제가(齊家) 즉 가정의 성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가족과 친척들이 서로 돕고 형제자매가 부모를 공경하며 약자나 아랫사람을 동정하고 보살피는 것은 인간성을 보호하며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嘉戚看承    가척간승    가족 친척 서로 돕고
昆玉姉妹    곤옥자매    형제자매 곤옥 같이
純孝爺懽    순효야환    부모 공경 효도하며
卑弱佑惠    비약우혜    약자에게 은혜 주네
刻薄肇衰    각박조쇠    각박함이 사라지고
憐惜奴婢    연석노비    아랫사람 동정하며
普護根源    보호근원    인간 근원 보호하여
康寧允慰    강녕윤위    기쁨 평화 위로 받네

인간이 삶을 시작하는 가정에서부터 가족과 친척들이 서로 돕고, 형제자매가 서로 우애있게 지내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생활은 복음을 실천하는 기본이다.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약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아랫사람들을 동정하며 보살피는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을 아버지로서 모시는 가정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3) 치국
「聖敎要旨」제24장은 치국(治國)에 대하여 말하는데, 현명한 인재에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직책을 주어 반역과 도둑을 다스리고 임금에게 충성한다는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고 이끌어가는 정치가들의 청렴결백과 경륜은 백성들의 평화와 복지를 좌우하기에, 치국을 책임질 수 있는 인재 양성이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卜賢徵哲    복현징철    현명한 자 불러들여
荷政輸忠    하정수충    정사 맡겨 충성하니
俘叛禦盜    부반어도    반역 막고 도둑 눌러
驗印頒封    험인반봉    공로 따라 벼슬 주네
賓吏阻蔽    빈리조폐    관리들이 은폐해도
釁詰藐躬    흔힐묘궁    틈 없애고 선행으로
俟駕奏職    사가주직    임금 명령 직책 다해
曷厭寬宏    갈염관굉    공적 세워 무궁하리

어느 나라든지 부정부패는 사회를 좀먹는 암세포와 같으며, 그 폐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가들이나 공무원들이 복음의 정신으로 채워져서 정직하고 헌신적인 자세로 공무를 수행할 때 사회 안에 하늘나라를 세우게 된다.
(4)평천하
「聖敎要旨」제25장은 평천하(平天下)를 설명하고 있다. 세상 끝에서 선교사들이 멀고 험한 길을 떠나서 병자들을 치유하고 자선활동을 실천하는 헌신적인 노력에 대하여 경탄하며, 선교사들을 헐뜯는 무리에 대하여 반박하고 있다.
崗磐晨屆    강반신계    새벽부터 산 오르고
湖漢星遷    호한성천    밤새우며 바다 건너
延嘏藥送    연하약송    병자에게 약 보내고
需飢糧捐    수기량연    식량 풀어 구제하니
偏側陸奠    편측륙전    무너진 곳 북돋우고
圯壞岸堅    이괴안견    기운 쪽을 세우거늘
那肯鬪隙    나긍투극    어찌하여 헐뜯으며
蕪穢侵牽    무예침견    더러움에 빠지는가

복음의 정신으로 충만한 선교사들은 개인의 안락함을 버리고 조국을 떠나서 굳이 험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와서 병자들에게 약을 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을 주어 구제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편협한 사고방식 때문에 오히려 자비를 실천하는 선교사들을 비방하고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 반박하며, 선교사들로부터 진실하고 드넓은 사랑을 발견하도록 강조한다. 세상을 널리 평화롭게 한다는 평천하의 이상은 먼저 그리스도교의 선교사들을 통해서 헌신적이고 구체적이며 광범위하게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3.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복음화 방안
과거와 현재는 시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상당히 크고 많은 변화가 있지만, 평신도들이 스스로 시작한 한국 교회의 역사적 경험과 이벽 성조가 「聖敎要旨」에서 복음화의 주체로서 평신도들이 누룩과 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제삼천년기의 복음화에 필요한 방향과 희망과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수신- 영적 쇄신
현대의 물질주의 환경에서 영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섭취하는 일은 복음화의 출발이다. 수신은 하느님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닦고 영적쇄신을 통해서 복음화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선비들이 강학에서 한문서학서를 연구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경험에서, 현대에도 역시 계시진리를 탐구하고 수용하는 교리교육과 성사생활, 신심생활의 실천은, 이전과는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회개하고 쇄신하며, 그리스도인다운 덕성을 닦음으로써 복음화되어가는 길을 발견한다.
“교회는 복음선포자이지만 교회 자체가 복음화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믿는 자들의 공동체, 생활과 친교가 가능한 희망의 공동체,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라면 그러한 공동체는 믿고 바라야 할 것과 사랑의 새 계명을 계속 들어야 할 것입니다. .... 교회가 전 세계를 참으로 복음화하려면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刷新)으로 교회 자체가 복음화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14)

(1)교리교육과 성사생활의 보완적 성숙   
“모든 이가 세상에서 그리스도 왕국의 확장과 발전을 위하여 협력하여야 한다. 그러한 까닭에 평신도들은 계시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치밀한 노력을 하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간청하여 지혜의 은혜를 얻어야 한다.” 15)
교리교육은 계시진리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이해하면서 복음에 따른 변화된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대개 세례를 받기 위하여 6개월간 예비자 교리를 마치고 찰고를 하
면 기본 교리에 대한 물음에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세하고 나면 그중에 일
부만이 형식적으로 견진성사를 위한 수차례의 교리교육을 받거나 극소수만이 어떤 특정
단체나 성경교육에 참여하고, 세례 후에 일 년도 채 되지 않아서 냉담하는 경우가 적지 않
은 실정이다.
현재의 교리교육은 계시진리에 대한 신앙을 충분히 심화시켜 주지 못하고 또한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신앙교육의 결핍은
사도직 활동을 위한 참여의식을 저하시키고 교회 공동체의 활력을 떨어뜨려서 복음화에 역행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일단 교회에 입문한 예비자들은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열망을 품고 있으므로, 찰고 때에 영세
후에 견진교리를 6개월 받도록 권유하면 대개 동의하였다. 영세에 이어서 바로 적절한 교리
서를 선택하여 견진 교리를 6개월 하면 예비자시절 보다도 교리를 더욱 잘 이해하고 신심
생활의 의미와 가치를 체험하며, 냉담 및 이탈을 방지할 뿐 아니라 신앙의 심화에 도움이 되
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직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말씀중심보다는 성사중심의 형식적이며 소극적인 신앙 상실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리교육과 신비와 은총을 체험하게 하는 성사생활의 상호보완적 제공을 통하여 열성적인 신심을 분발시키고 지속적인 회개와 쇄신을 통해서 성숙한 사도로서 양성하는 활동은 복음화의 출발이다.

(2)신심생활의 발전적 심화
①성모신심: 성모신심은 가톨릭 신앙의 시작이요 기초이다. 성모신심을 지닌 개인이나 본
당 및 단체는 발전하지만 그렇지 않으며 퇴보한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묵주기도는 성
모신심을 위해서 일반 신자들이 손쉽게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로서 구송기도와 묵상기도를
통해서 관상기도로 나아갈 수 있는 기도라고 알려져 있다. 전에는 가정에서 자연스레 가족
들이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신심을 배웠지만, 현대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학원공부로
인해서 가족들이 함께 묵주기도를 바칠 시간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본당에서 청소년들에게 성모신심을 심어주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첫영성체 가정교리를
마치면서 어린이들과 엄마들도 모두 레지오에 들어가도록 권고했는데, 다행히도 함께 교리
공부를 하면서 친교가 형성되어 거의 모두 레지오에 입단하여 최소한 꾸준히 묵주기도를
바치며, 지속적으로 성모신심을 배우고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②성체신심: 성체성사는 신앙의 원천이며 정점이다. 성체신심은 자주 미사에 참례하여 영성
체하고 성체조배를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내적으로 깊이 일치하도록 한다. 성체신심은
요즘 유행하는 뉴에이지에 대처할 뿐 아니라 관상기도로 나아갈 수 있는 가톨릭 고유의 영성이
자 동양적 심성에 적합한 영성으로서 개발되고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본당에서 성체신심을 전하기 위하여 성체조배실을 마련하고 첫영성체 가정교리를 하는 어린이
들과 젊은 부모들이 성체 앞에 머물러 ‘예수의 기도’를 배우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여러 가지로 바쁜 현대인들이 침묵 중에 앉아 있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하지만,
일단 성체신심의 맛을 느끼고 체험할수록 영성이 지속적으로 뿌리 내릴 것이다.

③순교신심: 순교신심은 신앙의 실천이요 완성이다. 순교자들은 신앙이 인간의 한계와 고
통을 초월하고 이겨내는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생명을 바쳐 끝까지 지켜
낸 순교자들의 신앙은 현대인에게 감동을 주며, 이기주의, 세속주의와 물질주의를 극복하고
신앙의 완성을 위한 목표를 제시한다. 순교자들에 대한 신심을 닦기 위해서는 순교자들의
전기를 읽고 묵상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는 103위 성인과 124복자를 시복시성했지만, 그 이상 일반 본당에서 순교자들의
신앙을 배우기 위한 사목적인 관심은 매우 미약하다. 그나마 성지순례를 통해서 순교자들을
기억하는데 순교자를 기념하는 성지조차 없는 경우에는 아예 기억되지도 못한다.
본당에서 순교신심을 키우기 위하여 9월 순교자 성월만이라도 미사 전에는 103위 성인호칭기
도나 124위 복자 호칭기도를 바치고, 봉사자들이 103위 성인전이나 124위 복자 약전을 읽고,
각 순교자에 대한 요약과 묵상 내용을 주일과 평일 미사 영성체 후에 5분 정도 신자들 앞에서
발표하여 순교자들을 배우는 노력은 순교신심으로 복음화되는 좋은 방안이다.

2)제가 – 가정성화
가정은 하느님께서 부부의 혼인을 축복하시며 세우신 인간사회의 원천이고 기초이다. 가정은 부부가 서로 친밀한 사랑으로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이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자녀들을 출산하는 생명공동체이고, 자녀들에게 말씀과 기도와 전례 활동을 통하여 복음적 가치관으로 사회생활을 하도록 대화하며 가르치는 신앙공동체이며, 마침내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날 희망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종말론적 희망공동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정의 성화는 역시 복음화의 기본이요 출발점이라고 하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부부의 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사이에 맺어지는 일치의 신비이며, 자녀 출산과 교육을 통하여 성덕에 나아가야 할 소명을 받은 가정교회라고 천명하였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풍요로운 사랑과 일치의 신비를 드러내고 그 신비에 참여하는 혼인성사의 힘으로(에페 5,32 참조), 그리스도인 부부는 부부 생활은 물론 자녀 출산과 교육을 통하여 성덕에 나아가도록 서로 도와주며, 또한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자기 생활 신분과 영역에 고유한 은총을 받는다. 실제로 이 혼인에서 가정이 생겨나고, 가정에서 인간 사회의 새로운 시민들이 태어나며, 성령의 은총을 통하여 그들은 하느님 백성을 역사의 흐름 속에 영속시키도록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가정 교회에서 부모는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자가 되어야 하며, 각자의 고유한 소명을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 16)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사도적 권고 『가정공동체』에서 “인류의 미래는 가정에 달려 있다”며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강화하고 개발하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미래의 복음화는 대체로 가정에 달려 있다는 확신하에, 가정은 최우선의 순위로 다루어야 한다.” 17)

특히 청소년들은 교회의 복음적인 가르침보다는 소비와 쾌락을 자극하는 대중매체의 영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심각한 가치관의 혼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현대에 심각하게 증
가하는 이혼, 낙태, 자살,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역시 性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육, 부
모에 대한 효도를 실천하는 생활 구조를 찾음으로써 복음화를 위한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부부는 서로 자신들에게도 또 자기 자녀들과 다른 가족들에게 은총의 협력자이며 신앙의 증인이 된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최초의 신앙 선포자요 교육자가 된다. 말과 모범으로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 생활과 사도직 생활을 가르치며, 자녀들의 소명 선택을 현명하게 도와주고, 자녀들에게서 성소가 발견되면 온갖 배려로 이를 길러 주어야 한다.” 18)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2015년에 개최된 제14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에서 인류가 직면한 가정과 생명의 심각한 문제를 안건으로 제시하고 활발한 토론을 거쳐, 그 결실로 지난 9월 1일 평신도평의회와 가정평의회를 합쳐서 ‘평신도가정생명성(省)’을 교황청의 공식기구로 신설하고, 최종문헌으로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을 발표할 정도로 가정과 생명문제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사목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치국(
治國)- 하늘나라
治國에 부합하는 복음의 개념은 하늘나라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는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자리에 하늘나라가 임하기 시작한다.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하늘나라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고 사랑의 봉사를 통하여 실현되어 간다.

(1)생활의 터전에서 친교 중심의 선교활동
그리스도인다운 말씀과 행동으로 행하는 선교는 하늘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하는 본질이다. 평신도들은 가정과 사회 곳곳에서 자기의 직책을 수행하며 하늘나라를 전하고 뿌리내리는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 수적인 증가에 치중하는 선교보다는, 상대에 대한 친절한 관심과 그리스도인다운 언행을 통해서 누룩과 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고, 신앙으로 초대하는 생활 현장 중심의 인격적인 친교를 통한 선교 방안을 교육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하도록 할 것이다.

(2)사회교리 교육
「聖敎要旨」의 제3부는 자연 안에서 하느님의 창조 업적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공경하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자신의 모습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6.18. 반포)의 내용과 상통하는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가 울부짖으며 겪는 고통을 바라보며, 특히 화석 연료 사용에 따른 지구 온난화, 식수 오염, 생물의 감소, 인간 삶의 질적 저하와 사회 붕괴, 세계적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셨다. 이러한 원인은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의 세 가지 핵심적인 관계가 깨어져 버린 불화가 바로 죄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인류가 빠져들고 있는 자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모든 이에게 ‘생태적 회개’를 촉구
하였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하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업 행위에 대하여 올바른 한
계를 정하고, 자제력을 키워주는 건전한 윤리와 문화와 영성, 습관과 생활양식을 바꾸는 교육
을 학교, 가정, 매체, 교리교육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실시하고, 단순히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해 해결하기를 촉구하였다.
(3)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교육과 기도운동
민족의 가장 큰 고통인 남북분단과 증오와 불화를 해소하기 위하여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
을 위한 기도운동과 교육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민족의 가장 참혹한 상처
가 깊게 남아있는 현장인 휴전선에서 신자들이 바치는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은
매우 효과적이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럽을 통치했던 로마 제국도 가톨릭교회를 없애지 못
한 것은 기도의 힘이었으며, 현대에 동구 공산국가의 몰락도 이면에는 세계 교회의 신자들
이 바쳤던 기도의 힘에 있다는 사실에 믿음을 갖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좀 더 활
발하고 강력한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현세의 평화는 이웃에게 대한 사랑의 결과이며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평화
의 모상이며 결실이다. 강생하신 성자는 평화의 임금으로서 당신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사
람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한 백성, 한 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의 일치를 재건하시고 당신
육신 안에서 미움을 죽이시고 부활로 현양되시어 사랑의 성령을 모든 사람 마음속에 부어
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사랑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며 참으로 평화를 찾
아 건설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19)

아울러 복음의 가치를 사회안에 침투시키는 노력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정치개혁은 절실한 관
건이다. 적지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치가와 공무원으로 활동하지만 사회가 복음화되지 못한
현상은 신앙과 현실의 심각한 괴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청렴하고 헌신적인 봉
사와 희생 자세에 대하여 국민들이 스웨덴에서 태어난 것을 로또에 당첨된 행운과 같다고
한 인터뷰(KBS 2016.2.4 방영, 스웨덴 정치를 만나다 1·2부)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한국 사회의 반복음적인 심각한 병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 정치가들이 복음에
대한 깨어있는 자세로 사회 전반에서 복음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첩경
이 될 것이다.

4)평천하– 해외 선교 활동
유가의 평천하의 관념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복음의 보편적 선교의 사명에 부합하고 있다. 복음은 개인주의나 지역중심주의나 단체이기주의로부터 평천하의 단계로 더욱 확장시켜 나가도록 시야를 열어 주고 있다.
 
(1)자비의 실천
프란치스코 교황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말씀을 자비의 특별희년 모토로 제시하였다. 현대 세계가 이웃의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무감각·무관심·무책임한 문제를 지적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도록 관심을 환기시키
며, 우리도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워지기를 촉구하였다.
“자비의 육체적 활동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곧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
아주며,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며, 죽은 이들을 묻어 주
는 것입니다. 또한 자비의 영적 활동도 잊지 맙시다. 곧 의심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며, 죄인들을 꾸짖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우리를 모욕한 자들을
용서해 주고,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인내로이 견디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하느
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20)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대로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 안에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자비를
실천하고, ‘자비의 선교사’로서 특별히 어려운 재난지역이나 선교지역의 궁핍한 이웃들에게
영적·물적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운동은 삼천년기에 더욱 확산되어야 할 복음화의 길이다.

(2)동양평화 운동
이벽 성조의 「聖敎要旨」, 정약종 선생의 『주교요지』와 성 정하상의 『상재상서』와 같은 초기 교회 지도자들의 신앙은 한국교회 창립 100년 후에 태어난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인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며, 민족의 독립을 넘어서 동양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국제적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창립한 이래 곧 박해가 일어나면서 초기 교회 신자들의 신앙
은 소극적이고 현실도피적이며 내세지향적인 신앙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안중근 의사
의 하얼빈 의거는 한국교회가 현실 사회 참여적이며 동양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방향으로 발
전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안중근(토마스) 의사는 정의의 사도로서 개인적인 기복신앙이나 편협한 민족주의가 아니
라, 민족의 독립과 동양 백성들의 평화를 위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1910년 3월 26
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평화의 사도로서 가톨릭교회가 지닌 도덕적 신뢰에 기초하여
민족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국제 협력 체제를 세우려고 헌신하였다. 민족의 남북분단과
군비경쟁으로 긴장과 위협이 날로 심화되는 아시아에서 안중근 의사의 신앙에서 나온 동
양평화 사상은 교회가 실천으로 옮겨야 할 절실한 복음화의 방향이다.

본당에서 청소년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신앙과 애국심, 동양평화정신을 심어주기 위하여 “안
중근의사 동양평화캠프”라는 프로그램을 3년간 준비하여 이승훈 선생이 영세했던 북경의
북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단동의 압록강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평화를 위한 기도예절을
하고, 김대건과 최양업 신학생이 머물렀던 차쿠를 거쳐 대련의 뤼순 감옥을 순례하는 행사
를 실시하였다. 청소년들이 매년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신앙학교 행사를 조금 더 준비하여
중국에 있는 역사의 현장을 순례하며 시야를 넓히고 동양평화 정신을 심어준 이러한 활동은
미래의 교회와 복음화의 주역인 청소년들을 위해서 매우 의미있는 행사였다.

(3)평신도 해외 선교사 파견 및 아시아 복음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열성의 부족을 극복하고 만민선교를 역설하면서 “외부 선교는
내부 선교를 강화한다.” 21)고 강조했다. 한국 교회가 요즘 활력을 상실한 이유 중의 하나는
영적·물적 축복을 풍성하게 많이 받은 만큼 훨씬 빈곤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충분히 나누려고
하지 않은 것도 그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히도 해외교회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있다. 참고로 개신교 신자 400명이면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며 2016년
현재 20,000여명이 넘는 해외 선교사를 파견한 상태이다. 천주교는 1,000여명의 해외 선
교사를 파견하였는데, 사제나 수도자들만으로는 해외 선교에는 한계가 있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거나 유학생활을 하는 기회
를 통해서 해외 선교를 할 수 있다. 또한 다문화가정에서 보듯이 국내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들을 선교사로서 양성하는 방안도 해외선교의 길을 열어가는 방안이 될 것이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의식이 중요할 따름이다.

보편교회는 특별히 한국 교회가 아시아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60%, 약 44억명의 사람들이 아시아에 거주하는데 복음화율은 3,4%에 불과한
실정이다. 복음이 전해진지 2000년이 지났지만 아시아 선교는 지리적으로 대단히 광범위하
고, 종교와 문화적으로 다양하며, 많은 국가가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교는 여전히 수월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은 교통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영향으로 정서적인 면에서 더욱 가까워지
고 접촉은 나날이 빈번해지고 있다. 선교에 있어서 항상 문제와 어려움도 많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선교하기에 더 좋은 여건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
대로 새로운 열성과 방법과 표현으로 아시아 선교에 있어 한국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하기 위하여 전향적인 의식변화와 해외 선교를 위한 획기적인 구조의 쇄신, 그리고 현실적
으로 인적 물적 투자가 절실할 따름이다.
“천주교와 비교해서 보면, 개신교의 해외선교는 평신도들의 활동이 중심이 되고 있다. 개신
교회는 교회제도의 구조적인 틀에 얽매어 있지 않으니 해외선교의 행보가 가볍고 빠르다.
그에 반해 천주교는 미사와 성사를 중심으로 제도적인 형태에 발이 묶여 있어 상대적으로
느리고 예속되는 환경적 영향도 많은 편이다. 이제 평신도 선교사 시대가 도래되어야 하지
만 아직도 제도적인 교회의 모습 안에서 선교를 이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평신도 선교
사들이 선교의 영역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사명은 매우 제한적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선교사
로 파견되기 위해 준비하고 양성하는 전문기관이 부족하여 합당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파
견되는 것이 현금의 실정이다. 평신도 선교사들의 역할이 좀 더 전문화되고 구체화되어야
한국 가톨릭 해외 선교 시대가 만개할 것이다.” 22)


4.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성찰과 희망

1)문제의 원인에 대한 성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평신도들의 지위와 역할과 사명에 대하여 역사상 어느 때보다 명시적으로 강조하였고, 광범위하고 복잡한 세상의 문제에 대하여 복음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평신도의 사명과 참여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회는 외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룬 점도 있지만, 수많은 이탈자 혹은 냉담자 양산 현실을 보면, 복음적 생활 방식이 개인의 심성과 사회의 문화와 제도 안에 내적으로 깊이 뿌리 내리고 변화와 성숙을 가져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는 급변하는 물질문명과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주일미사 참례자와 예비자 감소, 냉담자 증가와 같이 심각한 신앙 약화와 퇴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실정이다.
평신도들이 세상의 복음화 활동의 주체라는 교회의 공식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평신도사도직 활동은, 과거 1970~1980년대에 비하면 활기가 현저하게 떨어진 현상을 목도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신앙에 눈이 열린 일부 신자들이 아니면 평신도 사도직 활동에 무관심한 형편이며, 지금까지 지적되어 온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로 흔히 거론되는 문제는 가톨릭교회의 제도적인 문제로써 성직자 중심주의와 신자들의 수동적 태도의 문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문제점으로 성직주의, 관료주의, 복음의 이데올로기화 등을 지적하였다. 성직자는 가르치고 다스리며 성사를 베푸는 시혜자이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배우고 순종하며 성사를 받는 수혜자라는 피동적인 의식이 매우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성직주의는 사제들도 문제이지만, 교우들도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사제들에게 의존하거나 눈치를 보며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기를 꺼리는 수동성은 신앙의 성숙과 복음화의 큰 저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로 현대 교회는 형식주의로 인한 신심 약화와 교회 활동의 참여 퇴조 현상이다.
성사위주의 형식주의 신앙과 전통신심의 약화, 기도생활과 신앙의식 결핍은 복음화를 위한 사도직활동을 정체되게 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사는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표지’라고 강조했듯이, 형식주의의 원인은 성사를 가능하게 하는 말씀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성사와 더불어 말씀을 통해서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하늘나라의 신비를 체험하는 교리교육을 통해서 예언직을 수행하도록 북돋아 주어야 할 것이다.
과거에 신자들이 열심히 바쳤던 기도나 전통신심이 약화되는 이유는 가정에서 젊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기도생활을 가르치지 않거나 사목자들도 바쁘게 살아가는 신자들의 요구에 순응하고, 신자들은 신앙 교육이나 교회 활동에 참여를 꺼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신심을 신자들에게 적절한 영성생활을 지도하느냐에 따라서 극복할 수 있다고 하겠다. 신심의 강화나 영성생활의 심화는 신자들의 영혼을 충만하게 해서 선교 및 봉사활동에 더욱 활발하게 참여하는 동기와 힘을 제공할 것이다.
셋째로 사회의 세속화 경향에 따른 신앙의 진정성 상실의 문제이다. 신자들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경이나 교리나 강론을 듣고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기보다는, 사회의 대중매체나 유행을 그대로 따르면서,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하기보다는 세상에 의하여 교회마저 세속화되고, 교회 이탈과 냉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 소비주의,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복음적인 생활이 단순히 어렵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성실한 신앙은 누구에게나 참다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복음에 대한 확신을 주는 과제는 복음화의 관건이라고 하겠다.

2)역사에서 발견하는 희망
물론 복음화 수준을 단순히 교세 비율로 측정할 수 없지만,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선교 상황을 대략 짚어보면, 미래를 위한 복음화의 관건은 역시 평신도의 자발성을 회복하고 활성화하는데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일본 교회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1549년 나가사키에서 처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해서 한 동안 순조롭고 활발하게 성장하였지만, 박해를 받으면서 약 5만 이상의 순교자를 내며 신앙을 지켜왔으나, 아직도 교세는 100만 명으로 인구대비 1%에 못 미치지 못하며 그나마도 반 이상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중국 교회의 경우에는 당나라 때 경교가 들어왔지만 사라졌고, 원나라 때에 몬테 코르비노 신부가 들어와서 한 동안 번성하기도 했지만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마태오 리치 신부가 미셀 루지에리 신부와 함께 1583년 광동성 자오칭에 처음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한 이래, 박해를 겪으면서 약 10만 이상의 순교자들을 내기도 했다. 유럽교회는 중국 대륙을 선교하기 위하여 피눈물나는 공을 들였지만, 중국교회의 교세는 현재 약 1,000만 명으로 인구대비 0.5%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중국과 일본보다 훨씬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것도 평신도들이 한문서학서를 연구하여 스스로 시작한 이래, 현대 약 600만 교세로 인구대비 11%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각 나라와 민족에 따른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몇 가지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복음이 전해진 이래 가톨릭교회는 세 나라에서 모두 박해를 겪으면서 수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면서도 신앙을 지키고 이어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다른 차이는 첫째로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에서 나온 영성적 활기와 열성을 발휘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한국 교회는 평신도들이 誠實한 태도로 진정성있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째로 당시 사회의 주류였던 유교 문화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구태의연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계급사회에 대항하여 사랑과 친교의 정신으로 평등사회를 향한 획기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복음화가 진행되면서 억눌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3)삼위일체 친교공동체와 평신도의 자발성 회복
이미 앞서 제기된 문제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의 방향은 초기 한국 교회의 신앙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초기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은 창조주, 구세주, 성화주 하느님에 대한 내적인 신앙이 외적으로 선교활동에 있어서나 공동체 안에서 구현된 결과라고 본다. 따라서 현대의 제도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도 내적으로 삼위일체의 신앙과 친교의 정신이 현실적으로 구현된다면 자연히 평신도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회복하고 세계의 복음화를 촉진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삼천년기 복음화의 관건은 어떻게 평신도의 자발성을 회복하는가에 달려있다. 평신도가 명실공히 복음화의 주체요 선교사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교회의 안팎에서 구성원 자신과 구조가 쇄신되어야 할 것이다. 삼천년기에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정보통신과 대중매체, 인공지능의 물질문화의 파도와 충격에 직면하여, 교회가 시대의 징표를 깨닫고 신자 개인과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진정성있는 태도로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며 세상의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한국교회가 쇠락의 늪으로 빠져든 서구 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고 동아시아 복음화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회 생활의 틀 전체를 체험적 삶과 영성 중심으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쇄신작업이 불가피하게 요청된다고 보고 있다. 논자는, 한국교회의 미래와 동아시아 복음화의 미래는 중세 서구 사회의 수직적 사회 제도와 법 중심적 구조에 입각한 재래 교회적 생활양식을 탈피하고 영적이며 전인적 삶 중심구조의 한국-동아시아적인 교회 모델을 창출하는데 성공하는가 여부에 좌우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23)
신학자들이 과거의 중앙집권적 수직적이며 권위주의적인 교회의 구조에서 삼위일체의 친교를 체험할 수 있는 공동체의 구조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평신도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복음화의 사명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할 여건을 마련하는데 있어 타당하고 절실한 요청이라고 하겠다.
교회 구조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초기한국천주교회의 역사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현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친교의 정신을 더욱 촉진함으로써 공동체를 활성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계급적, 권위주의적으로 인식되었던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도 일반사제직과 특수 사제직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하나의 지체를 형성하며 신분에 따라서 그 역할이 다를 뿐, 신자 개인과 성직자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실현하기 위한 삼위일체의 친교의 공동체 안에서 상호협력의 관계를 정립하게 될 것이다.
마치면서

한국천주교회는 교회가 전혀 존재하지도 않던 황무지에서, 진리를 갈망하고 연구하던 선비
들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와 세상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바친 구세
주를 발견하고 성령의 활동과 계시를 통해서 교회가 탄생하고 생명을 바쳐 지켜낸 독특하고
장엄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에서 드러난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
원의 신비를 통해서 삼천년기의 복음화를 위한 근거이자 출발점이요 회복해야 할 목표로서
제시하려고 하였다.
특히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에 기여한 이벽 성조의 저서 「聖敎要旨」는 신자들이 겸허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성경에 나오는 正道를 단계적이고 발전적이며 구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실행하며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는 복음화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여전히 적극적으로 실행으로 옮길만한 비전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리교육과 자연과 현실에 뿌리를 둔 체험적이고 창조적인 영성의
심화를 통해서, 평신도의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체성을 정립하고, 가정과 사회와 세
계에 하늘나라를 세워가는 종합적이고 발전적인 복음화의 비전을 수행하기 위한 방향으로
평신도 사도직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하여 특별하고 비상한 수단이나 방안을 찾기보다는, 구원역사의 경
험으로부터 복음의 가치에 대한 성실한 자세를 회복하는 노력이야말로 복음화의 출발점이라
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위기와 무서운 박해를
겪어왔지만 본연의 복음의 가치에 대한 확신으로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고 발전하는 신앙의
생명과 활력을 발휘하였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수록 “원천으로 돌아가라!”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대로, 초기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의 역사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삼천년기의 복음화를 위한 발전의 기회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초 록>

교회의 본질은 복음화에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야말로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주체라는 사실을 천명한 바 있다. 삼천년기의 상황에서 교회가 수행해야 할 복음화의 방향과 과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 물질주의로 말미암아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영성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둘째로 세대갈등과 빈부갈등을 겪는 사회를 통합하는 공동체의 문화를 건설하며, 셋째로 환경파괴와 생명경시로 인하여 위기를 겪는 세상에서 생명존중과 지구 생태 환경보호 운동, 넷째로 기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실천하고 전쟁으로 갈등을 겪는 국제 관계에서 평화를 세우는 방향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세계 상황에서 교회가 복음화의 사명을 더욱 활발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개인적이고 구조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도 교회의 중앙집권적이고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기인하는 평신도들의 수동성을 극복하고 자발성을 회복하는 과제야말로 세상에서 광범위하게 복음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관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복음화의 사명과 문제의 해결 방향을 초기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 찾고자 하였다.
한국 교회는 교회가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상황에서 선비들이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중국에서 들어온 한문서학서를 연구하고 깨달음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선교하며 교회가 탄생하는데 특별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초기 한국 교회의 탄생은 구세사의 관점에서 볼 때 창조주 성부, 구세주 성자, 성화주 성령께서 활동하신 결과라는 점을 볼 수 있다.
우주만물의 기원을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발견하고, 인간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친 구세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순교로써 신앙을 지켜내었으며, 성실한 자세로 진리를 탐구하며 복음을 전하였던 활동은 성령의 영감에 따른 결과였다. 이렇게 외적으로 드러난 구원의 역사는 내적으로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신비를 공경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광암 이벽 성조가 저술한 「聖敎要旨」는 먼저 성경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이어서 유가 경전의 성실한 자세로 하느님을 공경하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방향으로 실천하며, 자연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 복음화의 방향을 단계적이고 통합적이며 발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방한하여 한국주교단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국교회가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삼천년기 복음화를 수행해야 할 사명과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교회는 이러한 초기 교회의 신앙과 역사를 ‘기억’하고, 현대에 새롭게 적용하며 실천하는 가운데 세상에 ‘희망’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는 시대적, 문화적으로 상당히 많은 격차가 있지만, 역사와 문화 안에서 불변의 영성적 가치를 찾아내어 복음화를 수행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복음화의 주체로서 평신도들이 누룩과 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양적 영성의 개발은 제삼천년기의 복음화에 희망과 활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1)「평신도 교령」, 1항.
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2007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8항.
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제삼천년기』(1995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7항.
4) 김병수, “한국천주교 해외선교 40년의 전망”,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1회 심포지엄, 80. “전교는 세례를 통한 교세의 확장에 더 중점이 되어있는 용어이고 선교는 복음선포라는 차원에서 복음적 삶을 드러낸다는 의미라고 본다.”
5)「선교교령」, 6항.
6) 교황 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선교』, 18항.
7)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총회, 「의제개요」 6항.
8)『교회의 선교사명』, 20항.
9)「교회헌장」, 31항.
10)「평신도 교령」, 2항.
11)「사목헌장」, 43항; 「교회헌장」, 36항 참조.
12)「선교교령」 2항.
13)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고(新民), 지선(至善)에 머무르는 데 있다. 머무름을 안 뒤에 정(定)함이 있나니, 정해진 뒤에 능히 동요되지 않을 수 있으며, 동요되지 않은 뒤에 안존할 수 있으며, 안존한 뒤에 능히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한 뒤에 능히 얻을 수 있다. 物(물)에는 本末이 있고 事(사)에는 終始(종시)가 있으니, 그것의 선후를 알면 곧 道에 가까운 것이다. 옛날  명덕을 밝히려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바로잡았으며, 그 집안을 잡으려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았다. 또한 몸을 닦으려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했으며,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앎을 투철히 했는데, 앎을 투철히 함은 사물을 구명하는 데 있다”(『大學』 經1장).
14) 교황 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선교』15항.
15)「교의헌장」, 35항.
16)『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11항.
17)『가정 공동체』, 65항.
18)「평신도 교령」, 11항.
19) 「사목 헌장」, 78항.
20)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15항.
21) 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 34항.
22) 김병수, 「한국천주교 해외선교 40년의 역사와 전망」, 『한국교회 복음화 과업 성찰과 전망』,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1회 학술 심포지엄 자료집, 93.
23) 심상태, 「동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사명」,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1회학술심포지엄』, 17쪽.

Writer : 김동원 신부   Date. 2016-12-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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