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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극-서문] 2017.3.11 김춘화교수 강의
七克
 
김춘화 크리스티나 교수 강의 2017.3.11
 
 
칠극서(七極序)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와 맞으면 좋아하고, 자기와 맞지 않으면 싫어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 그 마음의 움직임은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욕심, 방탕, 게으름의 일곱 가지가 되는데 이는 웃는 일과 우는 일의 지나지 않으며 처음부터 본성 안에 자기가 있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물은 깊고 조용한 것이나 바람이 불어 파도가 생기면 물거품이 일고, 우레 같은 소리를 내게 되지만, 물의 본바탕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잠시 후면 맑아지는데 이 깊고 조용한 바탕은, 밖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자기의 타고난 바탕이므로 바람이 물을 흔들었다고는 할 수 있더라도 물의 본바탕이 바람에 무너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본성 속에서, 오직 사욕에 밝아 사욕만 취하고, 하찮은 것을 찾으며 융통성이 없어져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 악기(樂記) 에서는 사람이 나면서 조용한 것은 하늘이 준 본성이며, 바깥 사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은 본성의 욕망이고 이것이 사물에 이르면 인식한 뒤에 좋아하고 싫어함이 생겨 울고 웃게 되는 까닭이니 그것은 행동에 감응을 받은 뒤에 생겨나는 것인데 (이를) ‘마음의 욕망이라고 하지 않고, ‘본성의 욕망이라고 한 것은 움직임의 바탕이 원래 조용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고 사물에 감응하여 앎이 생긴다하지 않고 사물이 이르러 앎을 인식하게 된다한 것은 조용함의 작용이 바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좋아함과 싫어함은 본성의 병은 아니나, 사물로 말미암아 바뀌게 되는데 사물이 이르렀는데도 바뀌지 않는다면 좋아할 만한 것이라도 좋아함이 없고 싫어할 만한 것이라도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므로 이 사욕이 한번 생겨나면, 칠욕(七慾)도 함께 일어나게 된다. 나방이 불로 향하는 것과, 파리가 육장에 모이는 것은 사욕 때문이고 파리가 불로, 나방이 육장에 모이지 않는 것은 사욕이 없기 때문이니 진()나라와 월()나라가 서로 비방하는 것이나, 육식주의자가 채식주의자를 비웃는 것도 각각 사욕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욕은 욕망의 뿌리이니 도적의 우두머리처럼 여겨야 할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사욕(私慾)을 이겨내고서 예()로 돌아간다(克己復禮) 하였는데 극기(克己)란 주정(主情)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이 조용해지면, 사욕은 머물 곳이 없어져, 욕망은 저절로 극복될 것이다. 하찮은 벌레들이 이곳 저곳에 모두 살고 있으나 불꽃으로 기어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이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가 적에게 이기는 것을 극(), 견고한 것을 꺾고 진을 무너뜨리는 것을 과(), 깨끗이 쓸어 없애버리는 것을 의(), 칠 것을 계획하여 근심을 없애는 것을 예() 라고 하는데 장수가 주정(主靜)을 하지 않으면 적을 이겨낼 수 없는데 만약 적이 있는 곳을 찾아 친다면 전() 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극()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인데 극벌원욕(克伐怨慾)과 같은 일을 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질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활과 화살을 활집 속에 감추어 둔다면 마른 그루터기와 다름이 없으나 감추어 둔 것이 없어 남을 칠 것이 없는 것만 못할 것이다. 곧 천하에는 활을 사용하여 남을 죽이려는 사람이 많으니, 그것을 마른 그루터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순양(順陽) 빤또하는 세상 사람들이 욕망이 많은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칠극을 지어 깨우쳐주려고 복오, 평투, 해탐, 식분, 색도, 방음, 책태를 지었고 읽다 보면 사람들을 공손하게 만들어주며, 거만하고 어리석음을 꺾어버릴 수 있으니, 이는 휘바람 새 가 투기(妬忌)를 청당(靑棠)이 분노(憤怒), ()와 철()이 탐욕(貪慾)을 폐구가 음란(淫亂)을 책태(策怠)가 게으른 이들을 채찍질할 수 있어, 한번이라도 본다면 깨닫지 못할 이가 거의 없을 것이고 진실로 활과 화살을 활집에 감추어 사람을 죽이는 일에 사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세상을 교화시킴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비록 이것이 주정(主情)과 일치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좋은 책이라 여겨 지은이를 위하여 기꺼이 책 머리에 서문을 쓰기로 하였다.
 
상요(上饒) 정이위(鄭以偉)가 지었다.
 
 
칠극인(七克引)
 
 
서쪽 먼 나라에서 서태(西泰) 마테오 리치가 가장 먼저 찾아왔고 이어 순양(順陽) 빤또하와 유강(有綱)우르시스가 믿음의 벗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문물과 제도 등을 보러왔는데 그들이 지니고 온 지도는 정교 했으며, 전해 주는 해외의 풍속과 교훈은 기이했다. 이 분들은 매우 품위 있고, 마음도 넓었으며 사리에 통달했고 학문도 뛰어나고 논리적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고 중국의 말과 문자를 배웠는데, 매우 열심히 학문을 연구해 유생들과 다른 점이 없었으니 참으로 뛰어난 선비라고 하겠다.
칠극은 순양이 지은 것으로 욕망을 누르고 이치를 보존하려 한 것인데 그 뜻은 하늘을 섬김에 근본을 두고 있으며 담담하여 경솔하지 않았으며 서양 성현들의 말도 인용했으나, 새로움만 있을 뿐 거짓됨은 없었다.
이 책은 천신(薦神) 선생들에게 전해오다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전해져 천하를 다스리는 왕조에서 뿐만 아니라 오도시(五都市)에서도 거두어 들일 정도였다.
공자는 인()을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네 조목으로 말씀하고는, ()로써 이겨낸다고 하였고, 맹자는 본성을 입, , , , 사지의 다섯 기관으로 말씀하고는 명()으로써 이겨낸다고 하였는데 공자와 맹자가 대를 이어서 오랜 세월동안 천하를 다스리고 있는데 서방의 선비 또한 우리 소왕(素王)의 공신이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도다.
 
南州 (남방 사람) 웅명우(熊明遇)가 적었다.
칠극편서(七克篇序)
 
어린 시절 내 고향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대서인과 사귀었다가 돌아와 남 모르게 하느님과 예수의 가르침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고 그 가르침은 천지의 주인을 하느님으로 섬기고, 하느님을 믿고 바라는 것을 근본으로 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아주며 자비를 베풀고 교화시키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고 죄를 뉘우쳐 참으로 돌아가는 것을 입문으로 하며, 삶과 죽음이라는 큰 일에 대비한 것이 있어 근심이 없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진량채) 그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고 20여 년이 지난 뒤 도문(都門)에서 직책을 기다리다가 서태(西泰) 리군과 사귀게 되어 전날 들었던 것들을 질문 하여 그 가르침을 모두 듣게 되었고 천주실의(天主實義)와 기인십편(畸人十篇)을 읽고 마칠 때마다 주공이나 공자의 가르침과 서로 맞는 것을 놀랍고 경이롭게 생각하였다.
그 뒤 서태(西泰)를 통해 순양(順陽) 방군(龐君)을 알게 되어 막역지우가 되었는데 방군(龐君)이 찾아와서 동방의 선비 가운데는 재지가 탁월하며, 배움에 힘과 마음을 다하는 이가 많은데 근본 요체를 제대로 찾지 못해 배움의 바탕을 하늘에 두지 않고 마음을 스승으로 삼으니, 이는 넓은 바다에 배를 띄워 놓고 키를 잃어버린 것과 같아 그 폐단은 도적을 아들로, 마귀를 천사로 여기니 위태롭기 그지 없다.” 하기에 나는(진량채)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마음을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삼가 하늘이 준 본성에 따라 하늘의 일에 이르는 것이 유자(儒者)들의 참된 본령이요, 학문인데 속인들은 하늘이 어떤 것이지를 어려워 알지 못하고, 심원한 이치를 가진 특이한 것이라고 생각해 권도(수단은 정도에 맞지 않으나 결과는 정도에 맞는 일)를 사용하여 하늘은 바로 내 마음에 있다고 했던 것인데 뒷날의 학자들은 마음이 하늘이라고 인식하게 되서 마음대로 행동하여 요체를 해쳐버리고, 헤매다 법칙을 털어 없애버리고는, 즐거움만 누리다 끝내 근본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소인이 되어 버렸는데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했더니 방군은 나의 말에 크게 탄복하고서 그가 지은 칠극을 보여 주었다.
그것을 다 읽어 보니 정성스럽고 참되며 절실하였고 유자(儒者)들의 법도에 맞는 것이 많아 그 구절과 글자는 모두 다 뼈를 찌르고 마음에 사무쳐 유자(儒者)를 고취시켜 주는 것이고, 언제나 하느님을 따르고 믿어 하늘의 보답을 누릴 것과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날 것을 바라고 있으니, 이것은 유자(儒者)를 보좌해 주는 것으로 극()의 뜻은 공자(孔子))와 안자(顔子)가 이야기 하였으니 하루라도 자신의 사사로운 욕망을 이겨낸다면, 천하 사람들은 인을 따를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물을 서로 해침도, 충돌도 없이 나란히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 성인의 치우침이 없는 바른 일인데 오직 ()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고 하였을 뿐 심오한 말이나 여러 이야기는 없었으므로 오랫동안 참되게 쌓아 나간다면, 위로 하늘과 통하게 될 것이라 해서 인자의 학문을 건도(乾道)라 하니 사물과 칠극은 그 뜻이 똑같다.
배움은 하늘과 통하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인데 무엇 때문에 하늘의 보답을 바라느냐 고 어떤 사람이 말하기에 농부가 정성을 들이지 않았는데 곡식이 잘 여물기를, 공인(工人)이 제품이 잘 만들어지기를 바랄 수 없듯이 하늘의 보답을 바라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인간 세상에서의 보답을 이를 뿐이니 천도(天道)는 끝이 없고, 하늘의 보답은 한계가 없으므로 하늘의 보답을 바란다면 날마다 부지런히 힘을 쓰더라도 부족할 뿐인데 이것이 바로 문왕(文王)의 덕이 순수하면서 끝이 없었던 까닭이며 공자가 늙음이 장차 이를 것임을 알지 못했던 까닭이다.
주공과 공자는 인간 세상에서의 보답을 버려서 그 마음을 비우게 했고, 대서(大西)는 하늘에 태어날 보답을 바라 실증해 내었으니 동서남북의 모든 성인은 그 도가 똑같다 할 수 있어 방군이 나에게 서문을 부탁했는데 글재주가 없기에 앞의 말들을 정리하여 서문으로 하였다.
 
전시(殿試)에 급제하여 흠차대신(欽差大臣)으로 칙명을 갖추어 무덕장군(武德將軍)으로 군사의 일을 맡은 산동(山東) 안찰사(按察使)의 부사(副使)인 진량채(陳亮采)가 지었다.
 
 
칠극자서(七克自序)
 
 
사람이 태어나서 하는 모든 일은 없애고 쌓는 일이며 몸을 닦는 모든 일도 옛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쌓는 것을 이르고 성현들의 모든 가르침은 악한 것을 없애고 덕을 쌓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모든 악한 일은 욕망에서 나오며 본래 나쁜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정신을 도우라고 하느님이 내려준, 공평한 의리와 정당한 도리를 가진 밀사인데 자신을 위해서만 다스렸기 때문에 죄가 되고 허물이 되 온갖 악이 뿌리로 삼게 되는데 이것이 마음에 있으면 부,,안락을 바라는 큰 세 줄기가 생겨나고, 부는 재물에 탐욕을, 귀는 거만함을, 안락은 음식에 대한 욕심과, 방탕함과, 게으름의 가지들을 낳는데 이 부, , 안락을 바람이 자아를 이기면 질투를, 자아를 빼앗으면 분노를 낳으니 사욕이란 그 뿌리를 하나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부 귀, 안락을 바람은 줄기이고 그 줄기가 낳은 거만함, 탐욕, 욕심, 방탕, 게으름, 질투, 분노는 가지인데 또 여러 가지의 죄와 허물, 해서는 안 될 생각과 언동 등은 이 일곱 가지가 모여서 열매가 되고 나누어져 잎이 된 것들로 지옥의 불길은 이 나무를 장작으로 하고 있어 사사로운 욕망을 버리면 지옥의 불길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으로 몸과 마음이 편치 못함은 이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이니 이것을 뽑아버린다면 모두 다 천사가 될 것이서 남을 자기처럼, 죽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듯 생각할 것이니 하늘나라는 가까이 있을 진데 욕망을 이기는 덕을 닦는 일은 하루종일, 평생토록 힘쓰는데도 거만함, 질투, 분노, 방탕과 같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겸손, 어짊, 곧음, 참음과 같은 여러 덕은 끝내 쌓여지지 않는 까닭은 세 가지 이치에 어두워서이다. 이는 근본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깨끗이 하지 않고, 절차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1. 근본을 생각하지 않음
 
거만스럽고 자신이 옳다는 이들은 덕을 닦고 욕망을 이기는 역량은 스스로 갖춘 것이라 여겨, 단 하나의 생각도 모두 하느님이 내려준 것임을 모르는데 사리에 밝은 이는, 부귀, 장수, 편안함의 복, 미미하고 일시적인 복도 모두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서 하느님께 돌리지 않는 것은 거만 마귀에게 공격을 받아 근본을 잊어버렸기 때문으로 아는 것도 없고 사리도 어긋나는데 옳다는 말을 들으면 경망스럽게 기뻐하지만 조금이라도 불쾌한 말을 하면 원망과 탓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닦은 덕은 덕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배와 수레가 사람을 운반하지만 공을 칭찬하지 않는 것은 공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을 실어 줄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한행동과 악한 행동은 사람의 뜻에 달려있어 착한 일을 하더라도 착한 뜻이 없다면 정신이 없는 것이니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하였을 뿐이다.
2.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않음
 
덕을 닦고 욕망을 이기려면 온 마음을 깨끗이 해 하느님께 향해야만 그 뜻이 가장 높다 할 수 있고, 다음은 하늘의 덕을 부러워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살아서는 깨끗한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고, 죽어서는 하느님과 신성의 짝이 됨에 뜻을 두는 것이므로 덕을 닦으면서 부귀, 영화, 명예 같은 세상 복을 바란다면, 욕망으로써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니 옛 욕망을 버리기도 전에 새 욕망이 보태어져 새 욕망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덕을 닦으면서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세상 복을 부러워하는 생각을 다스려 덕을 쌓는 것인데, 피해야 할 것을 잡아 덕을 헐어버린다면 덕은 이룰 수 없으니 마음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덕을 닦으려는 뜻을 가진 이들은 누구나 나는 털끝만큼의 욕망이라도 반드시 없애버릴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아름답고, 쉽지만 실행하기는 매우 어려워 평생을 다해도 이룰 수가 없는데 모든 욕망을 함께 다스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며 더욱이 처음 덕을 닦을 때는 미미하고 약한데 공격 받을 때 욕망은 크고 강해 대적하려면 뜻만 날카로울 뿐 미미한 기반마저 없어져 해를 받게 될 것이다.
 
3.절차를 따르지 않음
 
사욕을 이기는 것은 오래된 집을 허무는 것과 같아 주춧돌을 먼저 헐어버린다면, 집은 엎어지고 재목은 부수어져 사람들은 깔리게 될 것이나 먼저 기와와 처마를 거둬낸 뒤에 주춧돌을 헐면 재목과 사람이 다치지 않고 일도 하기 쉬울 것이다. 욕망을 이려면 반드시 하나씩 따로 공격하되 쉽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며 덕이 늘고 힘이 커지면 어렵고 큰 것으로 차츰 나아가 정밀함에 이르게 되면 밝고 편안해 막히고 떨어질 험한 곳도 빠르고 쉬운 곳으로 나가게 된다. 이는 사다리에 오르는 것과 같아 서두르지 말고 조심스럽게 올라 가야하는데 급히 서두르면 반드시 떨어지게 되고 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도달할 수 없을 것이므로 덕을 빨리 닦고자 잘못된 것을 헤아리지 않거나, 단계를 뛰어 넘는다면, 빨리 싫증도 나고 힘도 빠지게 될 것인데, 이는 절차를 따르지 않은 잘못이다.
 
나는(빤또하) 팔만 리 밖 외국에서 온 나그네인데, 일찍이 하느님의 은총과 자애를 받아 세상의 복이란 지극히 일시적, 미미한 것이며, 굳은 것, 한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니라는 것 을 깨달고 영원한 행복은 죽은 뒤에야 이루어 진다고 생각해 예수회의 가르침과, 뛰어난 분들의 가르침을 익히고 듣고서 자신을 바로잡고 세속을 교화시키려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인간과 사물의 참된 주인이 하느님임을 알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오를 수 있는 참된 지름길을 모르는 것을 가련히 여겨 몇몇 벗들과 구사일생으로 바다를 건너 3년 만에 중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중국의 언어와 문자는 너무 어려워 마음을 기울여 익히고 배워도 겨우 아이들과 비슷할 뿐이였지만 점차 깨우쳐 학자들의 강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유현들 가운데는 덕을 닦고 사욕을 이겨내는 일에 힘을 기울이는 이가 많았고 방법도 뜻도 우리와 매우 비슷한데도 다만 세 가지의 폐단 때문에 막히고 유혹에 빠지니 이에 들은 것과 좁은 식견을 모아 나의 깨우침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의 병은 일곱 가지고, 치료할 약도 일곱 가지인데, 결국 옛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쌓는 것으로 쌓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영원한 즐거움과 영원한 복을 쌓는 것이고, 없애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영원한 괴로움과 영원한 재앙을 없애는 것이니 정성스러운 잠언 정도로도 매우 좋겠지만, 여러 말을 늘어놓은 것은 사람들의 마음은 입과 같아 좋아하는 것을 각각 먹여 주어야하므로 즐기는 분들이 맛보기를 바랄 뿐이다.
 
만력(萬曆) 갑인(甲寅)(1614) 음력 10월 보름날 빤또하가 적었다.
 
천주교에서는 죄의 근본에 일곱 가지의 실마리가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교만, 둘째는 질투, 셋째는 인색함, 넷째는 분노, 다섯째는 마음이 먹고 마시는데 빠지는 것, 여섯째는 여색에 빠지는 것, 일곱째는 착한 일을 함에 게으른 것이다.
또 이 죄의 일곱 가지 실마리를 이겨내는 데는 일곱 가지의 덕이 있는데 그 첫째는 겸양으로 교만함을, 둘째는 남을 어질게 대해 질투를, 셋째는 재물을 버려 인색함을, 넷째는 참고 견딤으로써 분노를, 다섯째는 집착을 없앰으로써 먹고 마시는데 빠짐을, 여섯째는 욕망을 끊어서 여색에 빠짐을, 일곱째는 하느님을 부지런히 섬겨서 착한 일을 함에 게으름을 이겨내는 것이다.
 
 
*,,안락(안위)을 바람이 자아를 이기면 질투를 낳고
*,,안락(안위)을 바람이 자아를 빼앗으면 분노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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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천진암   Date : 2017-08-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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