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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건립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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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성당 건립현장


복자 요한 23세 교황-제2차 바티칸공의회 소집
"나는 그저 시골의 한 가난한 본당신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50주년/신앙의 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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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 생각할 때,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공의회의 개최를 결정한 요한 23세이다. 앞 글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적 방향설정은 교황 23세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후임이었던 바오로 6세에 의해 그 정신이 계승된다. 물론 지상의 교회라는 배가 항해하기 위한 방향설정이, 전적으로 교황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근본적으로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느님이다. “성부에 의해 성자께서 파견되어 구원업적을 성취하셨고, 이어 성령이 파견되어서 교회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면서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나아가게 하신다(참조, 교회헌장4). 한편, 이 지상의 교회를 이끌기 위해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그 머리로 삼으셨고, 그 후계자들로 하여금 그 직무를 계속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교황직이 갖는 특별한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62년에 개최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당시 얼마나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는지는 다음의 몇 가지 말을 들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1923년 한 추기경은 (비요 Billot 추기경), 앞으로는 공의회가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번거롭고 온갖 종류의 문제와 위험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조, K. Schatz,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역, 321). 전세계 2000명이 넘는 주교들이 모여 저마다 의견들을 낼테니 그것을 수습한다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요한 23세가 공의회 개최 의사를 말했을 때,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이 강한 반대와 우려, 회의를 표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밀라노의 대주교 몬티니 추기경 (Montini 훗날의 요한 23세의 후임이 될 교황 바오로 6) 을 포함해서 교회의 쇄신을 열망했던 사람들가운데 조차도, 많은 이들은 실제 그 쇄신이 겪을 현실적 난관들을 생각하면서, 공의회 개최는 좀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 했었다. 이처럼 그 공의회를 연다는 것은, 교회의 쇄신을 열망하는 이들이 보았을 때에도 <벌집> 을 쑤시는 일 처럼 보였던 것이다 (참조, K. Schatz,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역, 333). 이런 상황에서 과감히 공의회 개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교회역사가 샤츠 (K. Shatz) 가 평가하는 대로, “요한 23세 같은 태평함과 카리스마적 용기가 필요했다”. 도대체 요한 23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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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3세의 탄생지, 소또일몬테 (Sotto il Monte. 사진은 http://rete.comuni-italiani.it/blog/geo/016203 에서 가져옴)
 
그의 본래 이름은 안젤로 쥬세뻬 론깔리 (Angelo Giuseppe Roncalli) 로서, 1881 11 25, 이탈리아 북쪽의 베르가모 (Bergamo)  지방의 소또일몬테(Sotto il monte - 산아래 라는 뜻) 라는 곳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10남매 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당신부의 도움으로 (경제적 도움을 포함) 그는 11살 되던 해인 1892년 베르가모의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1904 8 10일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1900, 장학금을 받아서 교황청립 로마 아폴리나레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1905년에는 베르가모의 새교구장인 몬시뇰 라디니 떼데스키 (Radini Tedeschi) 의 비서로 임명된다. 이 주교는 당시의 가톨릭운동, 전례개혁, 신학교의 쇄신 등에 있어서 이탈리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명성있던 인물이었고, 론깔리는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06년부터 1914년까지 그는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고교부학, 호교론, 기초신학도 가르쳤다. 1차 세계대전중인 1916년에는 짧은 동안이지만 군종사제로 있으면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의 일생 중에서 불가리아에 교황청파견방문자(visitatore apostolico) 로 임명된 것은 그에게 또다른 영향을 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1925, 주교로 서품되어 이 임무를 받아들이면서 그가 모토로 삼았던 것은, <순종과 평화 Oboedientia et pax>였다. 그는 특히 불가리아 정교회와의 친교 및 공동작업, 트라치아 그리고 마케도니아로부터 망명해오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 그리고 정교회 신학생들이 신학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 나갔다.
   
1934년 교황 비오11세는 그를 다시 터어키 이스탄불에 교황대리자(delegato apostolica) 로 파견한다. 당시 터어키는 세속화를 표방하는 통치차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와 모든 종교공동체 사이에 긴장이 팽배해 있었다. 그 국가통치자의 강제명령에 의해, 다른 종교인들처럼 그도 주교복도 사제복도 아닌 세속 옷을 입어야 했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는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터어키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실제 미사 동안에는 복음 및 독서 낭독과 미사후의 강복을 터어키말로 하기도 하였다 - 그것도 라틴예절을 거행하는 가톨릭 공동체, 여러나라사람들이, 특히 주로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런 공동체에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동방정교회의 전통에 대한 지식을 넓혀나갔고 적대감이나 반대없이 그리스도 방문할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지역이던 터어키가 국제외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지역이 되어 가고, 독일 나찌즘의 공포가 유럽을 휩쓸고 제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그는 독일과 관련이 있거나 그 영향하에 있는 지역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구하는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1944년 그는 다시 파리에 교황대사로 임명되었고, 드골대통령에 의해 수많은 어려움을 겪던 프랑스 교회의 상황을 호전시킨다.
 
1952 11월 드디어 그는 72살의 나이로 그의 일생에서는 처음으로 참된 사목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즉 베네치아의 교구장 (patriarca)으로 임명이 되었으며 곧 이어 추기경으로 서임된다 (1953 1 12). 그의 교구장으로서의 행동지침은, <애정과 존중으로, 아버지처럼, con affetto, con rispetto, in forma paterna>  이었다.
 
1955년 사순절 서한에는 당시 이탈리아에서도 문제가 심각했던 막시즘과 유물론에 맞서 신앙의 힘에 대한 굳은 확신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1953년 토리노 성체대회에서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다음과 같은 말의 인용은 이런 시대의 오류앞에 대처하는 균형잡힌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죄는 근절시키되, 죄인은 사랑하라. interficite errores, diligite errantes>. 또한 1958년 성모승천 때의 강론은 교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표현한다. <교회가 있는 것은, 단순히 지상의 선익을 위해서도, 그리고 인간질서에 대한 정확한 지침을 주기 위해서도, 또 본질적으로는 이단을 물리치기 위해서도, 갓난아이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서도, 그리고 사람들이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보다 교회는 요한 복음 1장에 나오는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1958 10월 교황 비오 12세가 서거함에 따라 콘클라베 (Conclave : 새 교황을 뽑는 추기경단 회의) 가 열렸다. 25일부터 시작된 콘클라베에서, 28 11번째 가진 투표를 통해 그는  77세의 나이에 새 교황으로 선출된다. 나이로 보나, 사목적 경험으로 보나 (실제 교구장으로서 한 교구를 책임졌던 것은 6년정도밖에 않된다), 당시 돌고 있던 교황후보자 명단으로 보나, 그리고 그의 다양한 교회직무경력으로보나, 그는 단지 추기경단내에 있던 서로 다른 경향들의 일종의 중재안으로 선택된 것으로 해석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과도기 교황,  papa transitorio> 으로 여겼다. , 그냥 잠시 그 자리에 앉았다가 조용히 사라질 교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11 4일 취임하자마자 한 것은, 당시 진보파로 여겨지던 몬티니를 비롯한 23명의 새 추기경을 임명한 데 이어 아프리카 아시아 사람을 포함한 22명의 새 추기경을 임명하면서 추기경단을 확대하면서, 유럽중심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국제적인 성격을 띄는 추기경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정말로 깜짝 놀라게 한 일은 바로, 교황으로 취임한 지 채 석달도 되지 않아 일어났다. 1959 1 25일 로마의 <성밖의 바오로 대성당,  Basilica di S. Paolo fuori le Mura)  에서 교회일치를 위한 기도주간을 마치기 위해 모인 추기경들에게,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을 로마로 불러 보편공의회를 개최하겠다는 뜻을 발표한 것이다. 이와 함께, 로마교구시노두스의 개최, 그리고 교회법 개정의사를 또한 발표한다.
 
 
지금까지의 요한 23세의 여정을 보면서, 우리는 마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미리 본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로마가톨릭 교회를 넘어, 동방교회에 대한 관심과 배려 및 공동 협력, 유대인들에게 대한 이해와 실질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사랑의 실천, 교회의 참 본질 및 참된 사명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개방과 대화에로의 초대, 죄와 죄인들의 구분, 단죄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치료와 화해, 교회의 정체성과 세계에로의 개방 사이의 균형, 가톨릭 운동, 전례에 있어서 그 지역사회의 언어에 대한 존중 등등. 우리는 그가 공의회를 개최하며 표방했던 아죠르나멘토(aggiornamento) 정신이 단순히 “책상머리”에서 나온 사변적 이데아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에서 묵상되고 실천되던 정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까지도 <나는 그저 시골의 한 가난한 본당신부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라고 중얼거리며 난감해 하던 이 단순한 사람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고, 사람을 사랑했고, 소용돌이 치고 있는 세상에 꾸짖음과 단죄보다는끊임없이 대화를 제안하고 평화를 외쳤던 진정한 한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성령이 어떤 큰 일을 하실 수 있는가를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해  출범한 공의회는 이제 약 3년간의 험난한 항해를 할 것이겠지만, 이미 출발한 공의회라는 배를 목적지인 항구에 닿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또 다른 <>(바오로 6)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었다. 요한 23세 교황 자신은 공의회가 개막된 지 약 8개월 후, 아직 본인이 서명하고 인준한 공의회 문헌이 하나도 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1963 6 3일 서거한다. 사실, 그가 공의회 개최를 선언했던 그 당시 이미 그의 건강은 암에 의해 심각한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그런 몸을 이끌고 그는 공의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며 로레또 성지를 순례하며 성모께 기도했던 것이다.
 
그는 2000 9 3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그의 유해는 현재 바티칸 베드로성당 내에 모셔져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 앞에 와서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한다. 요한바오로 2세 이전까지는 아마도 베드로 성당 내에서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머무르며 기도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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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내에 안치된 요한 23세
(참고문헌, Enciclopedia dei papi)제2차바티칸공의회 5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의 해 선포에 즈음하여, 2차바티칸공의회 개최에 관련된 주요 인물들과 당시 교회 내외의 상황을 간결히 훑어보고 있읍니다. 연재되는 본 내용을 집필해 주시는 최현순 박사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동대학원에서 교육 석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敎義神學  석사,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학부 졸업, 동대학원에서 敎義神學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강사로 강의하고 있읍니다.-편집자-
 

Writer : 최현순 박사    Date : 2012-10-2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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